2024년 11월 09일(토)
에너지경제 포토

조창용 기자

creator20@naver.com

조창용 기자기자 기사모음




OPEC "감산없다" 유가전쟁 '막' 올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4.11.27 20:14

내년봄 배럴당 35달러까지 하락 예고

▲세계수출국기구(OPEC)본부. 사진=OPEC 홈페이지

[에너지경제 조창용 기자] "원유시장 주도권을 둘러싼 '유가전쟁'의 막이 올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석유장관회의에서 대규모 감산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국제유가의 추가 하락도 예상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들은 OPEC이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시작된 석유장관회의에서 회원국들이 감산 대신 현행 산유량 상한선을 엄격히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회의를 하루 앞둔 26일(현지시간) 침묵을 지키던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 등 산유랑 조절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서 비관론으로 기울었다. 사우디 등 걸프지역 6개 산유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이사회(GCC)가 감산하지 않기로 의견을 정리한 것이다.
 
알리 알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원유시장이 결국 스스로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른 회원국의 감산 압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러시아 국영 에너지 기업 로스네프트의 이고르 세친 회장 역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아래로 떨어져도 감산은 없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OPEC 회원국은 아니지만 전 세계 원유시장의 11%를 점유하고 있어 영향력이 작지 않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감산을 주장해온 이란도 "원유시장에 대한 의견이 사우디와 가깝다"며 감산을 포기한 모습이다. 이날 다우존스에 따르면 한국시간 기준 오후 1시2분 현재 글로벡스 전자거래에서 뉴욕상업거래소 1월물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가격은 뉴욕 마감가보다 배럴당 0.95달러 밀린 72.7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4년래 최저치다.

런던ICE 선물거래소의 1월물 브렌트유 가격도 배럴당 1.16달러 하락한 76.59달러를 나타냈다.

지난 6월 이후 약 31%나 떨어진 유가는 추가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가정보 업체 오일프라이스인포메이션서비스의 톰 클로자는 "내년 하반기까지 원유 수요가 일 평균 100만~150만배럴 줄 것"이라며 "내년 봄까지 OPEC이 감산에 합의하지 못하면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저유가에 따른 파장도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클레이스와 웰스파고가 미국 에너지 업체에 지원한 대출금 8억5,000만달러의 손실위험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두 은행이 미국 에너지 업체 새바인오일앤드가스와 포레스트오일 합병과정에 브리지론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BP의 주가가 6월 이후 17% 하락하고 셰브런도 같은 기간 11% 떨어지는 등 석유 메이저의 손실도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시추 업체 시드릴은 주가가 23% 가까이 폭락하면서 배당도 연기했다.

유가 하락세가 시작된 6월 중순 이후 노르웨이 크로네화 가치가 12%나 하락하고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의 나이라화 가치는 역대 최저로 절하되는 등 산유국들의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OPEC 입장에서 감산은 원유시장 점유율을 내준다는 의미"라며 "충분한 외환보유액 덕분에 걸프만 연안 국가들은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해 사실상 가격전쟁에 들어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타깃은 미국의 셰일오일이다. 세친 회장도 "저유가는 원유 생산비용이 높은 곳에 더 큰 피해를 안길 것"이라며 셰일오일을 사례로 지목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장에서는 지난 1986년 미국과 사우디 간 유가 전쟁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사우디는 산유량을 급감시킨 뒤 다시 대규모 증산에 나서면서 유가를 배럴당 10달러까지 떨어뜨렸다.

덕분에 최대 산유국 자리를 되찾았고, 미국의 에너지 산업은 붕괴됐다. 최근 사우디의 행보도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러시아와 이란 경제를 압박하기 위해 함께 유가를 끌어내렸던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시장 주도권을 놓고 양국이 다시한번 '치킨 게임'을 벌이는 사이, 세계 에너지업계는 차디찬 칼바람을 맞고 있다.


■ OPEC 원유 생산합의 메커니즘


1961년 출범한 OPEC는 원유를 생산하는 12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쿠웨이트, 나이지리아, 베네수엘라, 알제리, 앙골라, 카타르, 리비아, 에콰도르 등이 회원국이다. 2012년과 2013년 데이터를 CIA 팩트북이 집계한 기준으로 보면 전 세계 원유 생산량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41%에 달한다. OPEC 내에서 생산 쿼터는 사우디아라비아가 32%를 차지해 가장 생산량이 많고 이란 10%, UAE 9% 등 순이다. 현재 전체 생산량은 하루 약 3000만배럴이다. OPEC는 오스트리아 빈에 본부를 두고 매년 두 차례 회담을 열어 석유 생산량 조절을 논의한다.

27일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원유 감산을 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 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번 총회를 앞두고 원유의 힘으로 세계 경제를 뒤흔들던 OPEC의 기세가 크게 흔들렸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OPEC 회원국마다 유가 수준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 미국이 셰일오일을 생산하면서 OPEC의 시장 지배력이 약해졌다는 점, 전 세계 석유 수요가 과거처럼 강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OPEC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회원국 간 내분이 심해지면 54년 역사를 가진 카르텔이 깨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27일 오후 1시 50분 기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72.81달러를 기록해 전 거래일보다 1.1%나 떨어졌다. 두바이유 현물 가격도 74달러까지 떨어졌다. 60달러대도 머지않은 것이다. 유가 하락 배경에는 OPEC가 결국 감산에 합의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감이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OPEC는 큰 위기를 맞는다. 금융위기 전 배럴당 140달러에 달하던 유가가 40달러대까지 하염없이 추락했기 때문이다.그해 12월 OPEC는 하루 42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했다. 10달러 붕괴설도 나왔지만 감산 효과로 유가는 그나마 40달러 선을 유지했다. 2011년 이후 OPEC는 하루 3000만배럴을 유지했고 그 덕택에 유가는 상승세를 나타냈다. 당연히 회원국들은 담합에 따른 이득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6월부터 유가가 빠르게 하락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원유 생산국 재정을 위기로 몰 정도로 폭락했다. OPEC는 회원국마다 유가에 따라 재정에 미치는 충격이 다르다.

국가별로 생산비용과 재정 운영이 다르기 때문이다. OPEC 국가들은 재정 수입 중 상당 부분을 석유 판매에 의존하고 있다. 도이치뱅크에 따르면 이란은 유가가 140달러를 유지해야 재정수지 적자를 겪지 않는다. 베네수엘라도 재정수지를 방어할 수 있는 유가가 121달러로 높다. 이들 국가는 어떻게든 감산을 통해 유가를 올리고 싶어한다.

반면 쿠웨이트는 75달러, 아랍에미리트는 70달러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도 93달러로 높지만 셰일가스에 대한 견제를 위해 저유가를 유지하려고 한다.

양측 상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감산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유가를 상승시키려면 회원국 전체가 감산을 해야 하는데 가장 생산량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OPEC 생산량 중 32%를 차지)가 감산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한 국가만 감산하면 그 국가는 유가 수입이 더 줄어들기 때문에 혼자 감산할 이유가 없다.

이런 이유로 궁지에 몰린 이란과 베네수엘라 등에 재정적자 압력이 심각해지면 OPEC에서 뛰쳐나갈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OPEC에 정해진 쿼터(몫)를 초과해서 생산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초과 생산에 따른 추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OPEC가 깨지는 것이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