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박순주 기자] 봄 기운이 완연했던 지난해 5월. 서울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기상청에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례적으로 기획재정부 국장급 간부가 ‘넘버 2’ 자리인 기상청 차장에 임명된 것이다. 당시로선 기재부 출신 인사가 기상청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긴 사례가 처음이라 기상청 개혁 작업을 위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상당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기상 오보청이란 오명, 인사 청탁과 납품 비리 의혹 등으로 기상청이 존립이 흔들릴 정도의 위기를 겪던 때라 투명성 확보와 직원들의 사기 진작 그리고 분위기 쇄신이 필요했던 터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상청은 기술직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이라 역대 차장들은 대부분 내부 인사가 승진 임용돼 왔다. 그 자리에 타 부처 출신 인사가 임명된 것이다. 기재부 대외경제협력관을 역임한 정홍상 차장이 그 주인공이다.
◇ 효율화, 투명화에 주력…협의체 구성해 기상청 개혁 나서
정홍상 차장은 28일 신년을 맞아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기상청 차장으로 임명된 지 8개월 가량 지났고, 그동안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며 "기재부에서는 전문적인 경제 쪽을 관리했는데 이곳(기상청)에서는 조직을 관리하고 업무 전체를 효율화, 투명화 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차장은 또 "(임명 당시) 각종 비리 의혹으로 기상청이 위기를 겪고 있었다. 직원들은 침체돼 있었고, 자부심도 많이 잃은 상태였다. 따라서 반성할 점도 일부 있었지만 직원들의 개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국민에게 신뢰받고 누구든 와서 일하고 싶은 기상청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간 많은 대화를 통해 분위기가 쇄신됐다고 본다"며, 나름의 성과를 설명했다.
기상청의 장비 구입 등과 관련해 잡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절차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고, 객관적인 전문가를 구성해 합의체를 만드는 등의 방식을 도입해 이를 불식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게 정 차장의 설명이다.
비리가 있을 경우 내부자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는 ‘공익신고센터’도 외부 회사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그는 "조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비리는 내부에서도 고발할 수 있어야 조직이 건전하게 돌아간다"며 "장비 문제도 절차 면에서 조금 불투명한 부분이 있었는데 투명하게 바꿨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상청은 장비 구입 시 규격을 심사하고, 조달청에 의뢰하고, 간부 심의회 절차를 도입하고, 변호사와 회계사, 교수를 옴부즈만으로 위촉하는 등 과거에 비해 투명성을 상당히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기후변화와 장기 전망 주력, 소통 행보 이어가
정 차장은 특히 "기상청이 하는 일을 정확히 더 알리는 게 필요하다"며 소통이 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기상청은 레이더, 기상위성, 슈퍼컴퓨터 등의 장비를 활용해 관측하고 데이터를 입력해 수치모델을 돌리고, 전문가의 판단을 더해 기상예보를 한다.
기후변화의 변수를 관측해 50년, 100년 후의 기상 시나리오를 만들기도 한다. 민간 기상산업도 육성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해외원조사업(ODA)을 통해 베트남,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기상정비를 설치하는 사업을 시작한다.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등을 통해 기상관련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안도 제안할 예정이다.
정 차장은 "정부 차원에서 GCF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사업모델을 제시할 것"이라며 "그 중 하나가 ‘기상+농업용수 개발’ 사업모델이다. 이 사업은 기후변화 대응 목적에도 부합하고 물, 식량, 에너지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아이템이라 GCF가 사업모델로 채택할 확률이 높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지방청 6곳, 기상대 45곳 등 지방조직도 많고 특별한 분야별로 전문화돼 있는 조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러한 일들을 잘 모른다는 게 정 차장의 설명이다.
그는 기업 날씨경영의 좋은 선례로 CJ제일제당을 꼽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이례적으로 기상을 전공한 전공자를 2명 뽑았다.
또한 그들은 설탕의 원료인 원당을 주로 수입하는 과정에서 기상전문가로서의 분석을 통해 훨씬 유리하게 선물시장 거래를 이끌어냈고, 이를 통해 인건비를 충분히 충당하고도 남는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후문이다.
정홍상 차장은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대학원,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한국은행 자금부와 안권회계법인에서 잠시 근무한 뒤 행정고시 28회에 합격해 경제기획원 기획국 자금계획과 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청와대 경제구조조정기획단 행정관, 기획예산처 기금제도과장, 예산제도과장, 재정총괄과장, 기재부 대외경제협력관 등도 거쳤다. IMF 재정국에서 4년, OECD 경제국에서 1년, 아시아개발은행 재무국장으로 5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더욱이 그는 기재부 재직시절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UN기후변화 협약을 중심으로 만든 국제 금융기구인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 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 공로로 홍조근정훈장까지 받았다.
정 차장은 "경쟁국인 독일, 스위스에 비해 여러모로 부족하기에 처음에는 GCF 사무국 유치 가능성이 없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게 낫지 않느냐는 목소리까지 나왔었다"는 당시의 어려움을 전하면서도, 유치를 위해 전 방위로 뛰어다녔던 시절을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또 GCF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요인을 묻는 질문에 "개발도상국들의 지지가 컸다" 전하고, 이러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벌인 각고의 노력들을 전했다. 그에 따르면 중남미 환경장관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당시 거주하는 호텔로 직접 찾아가 꽃이라도 전달하면서 지지를 이끌어냈다.
국내 대사관들을 돌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고, 모국의 고급 정보를 확보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대사는 "한국이 개도국의 자랑인데 우리가 도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했었다고 한다.
정 차장은 "외교부, 환경부, 기재부, 인천시 등 4곳이 협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서도 "그렇지만 협업을 잘 이끌어 냈다는 게 또 하나의 보람"이라며 유치에 힘을 보태준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 소비 절약이 곧 환경과 에너지 보호의 길
그는 평소 환경보호를 위해 하는 활동을 묻는 질문에 "소비를 절약하는 것이 결국 환경을 보호하는 길"이라며, 절약을 강조하기도 했다. 종이를 절약하는 것이 나무를 보호하는 것이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것이다.
정 차장은 "한국은 음식을 한상 가득 차려놓는 문화인데 이제 이러한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그는 직장과 거주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이 사이를 도로로 연결하는 도시 구조가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정 차장은 마지막으로 "기상청의 기상예보 적중률이 90% 이상으로 높아졌다"며 "현재의 과학기술, 장비수준으로 넘지 못할 벽이 있어 100% 맞출 수는 없다는 점을 국민들이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