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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선의 골프이야기]첫 흑인 골퍼 알시아 깁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5.02.03 09:23

차별 깬 테니스 여제, 골퍼로 우뚝

최초의 여성골퍼가 메리스튜어트 여왕이라면 또 한명의 여성 프로골퍼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알시아깁슨(Althea Gibson 1927~2003)이라는 흑인여성 이야기입니다. 알시아깁슨은 뉴욕 할렘가 출신입니다. 사우스캘로라이나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자란 곳은 뉴욕 할럼가입니다.

당시 여성이 골프를 친다거나 운동을 지금처럼 마음대로 할수있었을까요? 영국의 자랑인 세인트 앤드류 골프장 올드코스 18번홀 그린 뒤에 어떤 경고문이 붙어있는지 혹시 아시나요? "NO DOG OR WOMEN ALLOWED"라는 글귀 입니다. 여자와 개는 출입금지라는 뜻이지요. 이처럼 여성비하가 일반화된 상황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멋지게 빛을 낸 사람이 바로 알시아깁슨입니다. 

알시아깁슨 선수는 골프선수 이전에 최초의 흑인 프로테니스선수로도 유명했습니다. 뉴욕할렘가에서 패들볼을(Paddle ball)을 치던 사람입니다. 하루는 라켓으로 코트의 벽면으로 향해 공을 치고 있던 깁슨 선수를 우연히 당시 뉴욕경찰소속 테니스선수 코치인 버디워크가 발견합니다. 그는 천리마를 알아본 백락 처럼 버디워크 코치에 의해 테니스선수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1950년대 모든 스포츠는 백인 위주로 돌아가고 있었고, 특히 테니스는 백인 전통의 스포츠라고 치부되던 상황이었습니니다. 당연히 그녀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겠지요. 당시 인종차별을 보여주듯 여자프로대회와 US오픈 등의 시합에 신청을 해보았지만 협회에서도 대답은 커녕 신청 조차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의 고통을 엘리스마블이라는 전 US오픈 우승자가 알아채고 끈질기게 테니스협회를 설득해 결국 알시아 깁슨은 인생역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깁슨이 프로로 데뷰를 하자마자 7년간 여자 테니스 최고봉으로 우뚝서게 됐으니까요. 여기에 그치지않고 4대 메이저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기염을 토하죠. 당지 그녀의 나이는 29세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성공무대를 누리던 알시아깁슨은 우연히 친구를 따라 골프장에 가게 됩니다. 바로 그날부터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지요. 그녀는 놀랍게도 골프클럽을 잡은지 3년 만에 여자프로골프협회 문을 두드릴만큼 준비된 선수로 성큼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골프협회 역시 테니스협회 처럼 흑인을 받아들이지 않는 풍토가 심했습니다. 골프도 테니스와 마찬가지로 백인전통의 운동이라 자부하고 있었던때 였으니까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던가요? 그녀를 유심히 보고 응원하던 협회의 한 인사가 적극적으로 지원해 결국 깁슨 선수는 1963년에 골프프로로의 전향에 성공합니다. 그후 알시아깁슨은 7년간 프로골퍼로 활약합니다. 아쉽게 우승은 없지만 플레이오프까지 가서 2위를 기록한 것이 그녀가 프로골프 무대에서 세운 최고로 성적이었죠.

그후 그녀는 헐리웃으로 날아가 배우로 활약하기도 했으며 나중에 책을 펴내기도 합니다. 그녀의 책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I always wanted to be somebody.(나는 늘 최고가 되고 싶다.) 그녀는 이름없는 선수로 남지않겠다는 각오로 끝없는 노력을 통해 성취를 일궈낸 멋진 여성입니다. 깁슨 선수는 새로운 도전을 늘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멋지고 강한 마인드의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골프인구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골프인구는 483만명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여성이 170만. 전체 인구의 35.1%가 여성골퍼라는 뜻이죠. 앞으로 더욱 늘어나겠지요. 여성이 누리는 인권이나 평등은 사실 오래전부터 끈임없이 노력하고 희생한 여러사람들이 쌓아 놓은 눈물과 땀에서 비롯됐지요. 특히 스스로를 믿는 강한 사랑에서 부터 시작된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같은 결실이 당연한 것으로 간과되지 않고 귀한 것으로 기억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속에 살아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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