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형 생활경제부장 |
초식남의 원래 의미는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남자를 뜻한다. 잘생긴 꽃미남의 의미라기 보단 온순한 성격에 부드러운 이미지를 지녔다. 여성스러운 취미를 공유하기에 이들은 요리와 뷰티, 패션에 관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해 문학과 노래에 관심이 많고 매사에 꼼꼼하고 섬세한 감각을 뽐낸다.
초식남의 인기비결을 사회학적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경쟁사회에서 밀려난 많은 남자들이 야성을 버리고 혼자만의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오랜 경기침체기를 겪으며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젊은 세대 혹은 아버지들이 야망으로 부터 멀어져 스스로를 ‘초식’이라는 수렁에 유배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역시 ‘잃어버린 20년’불리는 경제난을 지나며 이러한 초식남이 집단적으로 배출됐다는 분석이 있다.
한 TV방송에 소개된 일본의 초식남은 애완용 도마뱀에게 밥을 주며 희열을 느끼고 사는 이유의 전반을 애완동물에게 할애한다. 그는 일명 후리타(생계형 아르바이트족)로 살며 서른 여덟의 나이에도 결혼 안하고 하루 8시간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만으로 생활비를 번다.
한국에서의 초식남 현상은 일본과 조금은 다른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 원인이 바로 ‘일에 지쳐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 ‘초식남이 늘어나는 이유는 일에 지쳐서’ 라고 하는 응답이 40%로 가장 많았다. 20대 30대 가장 연애에 신경을 쓰고 또 이성과 만나야 하는 시기에 너무 많은 일로 지쳐서 이성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이 일본과는 조금 다른 현상이다. 본성마저 잃어버린 한국의 초식남은 일본 초식남보다 더욱 가혹한 천형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초식남의 계보는 사실 88만원 세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취업난과 더불어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20대를 가리켜 부르는 수식어인 88세대는, 그 열정페이에서 벗어나지 못해 자신을 ‘잉여’라 칭하는 이후 세대가 초식남으로 분해 초라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주어진 환경과 제도에 순응하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남의 말 잘듣는 것 외에 딱히 탈출구는 없다.
경쟁사회가 낳은 초식남 출현은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사회가 만든 폭력이기도 하다. 성공한 초식남은 감성과 미적 감각을 무기로 헤어디자이너, 셰프, 디자이너, 작가 등으로 성공하기도 하지만 여성들이 사랑할 만한 이들 초식남으로 성장한 사례는 사실 손에 꼽힌다.
그런데 이들 초식남들의 출현을 반기는 분야가 뷰티와 패션업계이다.
자신을 꾸미기 좋아하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하는 초식남들이 뷰티 패션업계는 마케팅 대상으로 포섭된 것이다. 이들은 연애와 사회참여 보다는 나 자신과 취미에 올인하는 경향을 보이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풀을 먹는 초식동물처럼 남성다움에 구애받지 않는 남성은 남녀 패션을 경계를 넘나들며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오늘 번 돈 모두를 쓴다고 해도 행복한 이유가 그것이기에 주저함이 없다.
그러나 진화와 진보의 입장에서 볼 때 초식남의 등극은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이들 중 일부가 다행히 직장을 구했다고 해도 사회는 초식남으로 살아가길 권한다. 사실 분노를 부르는 사회에서 분노할 줄 모르는 초식남의 등극은 위정자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초식남이 사회를 지배할 무렵이면 ‘혁명’이니 ‘의거’니 하는 단어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남성다움이나 여성답다는 것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나 관습적 성별 존재 방식을 잃어버린 숱한 1인 세대의 양상은 세금을 내거나, 물건을 구매할 인적 동력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묻고 고민해야 한다. 진정으로 이들로부터 야망과 본능을 앓은 이가 누구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