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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아일란이 꿈꾸는 세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5.09.21 11:07

최영운 온라인뉴스부장

▲최영운 온라인뉴스부장

보기만 해도, 살짝 만지기만 해도, 날아가버릴 것 같은 아깝고도 귀여운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는 두 살 위인 형 갈립과 함께 한껏 설레였을 것이다.

엄마는 아일란에게 마치 먼 친척집 놀러가듯 빨강색 티셔츠와 군청색 반바지 옷을 곱게 입혔다. 그리고 꼼꼼하게 운동화 끈까지 다시한번 묶어주며 말했을 것이다.

"사랑하는 내 아들 아일란아, 이제 곧 엄마와 형, 아빠랑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 전쟁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난단다. 그 곳에서 형과 마음껏 뛰어놀고 흙장난도 하며 행복하게 살자. 네가 아끼던 곰인형은 그 곳에 도착해서 더 좋은 것으로 사줄 테니 곰인형과는 이제 그만 작별인사를 하렴. 가야 할 길이 좀 멀고 위험할 수도 있으니 엄마아빠 손을 절대 놓지 말고, 내 아들 알겠지. 갈립 형도 옆에서 항상 너를 지켜줄 테니 무서워하지 말자. 내 아들 아일란아, 우린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사랑한다, 아일란아 …."

이달 초 터키의 한 해변에서 3세 소년의 시신이 발견됐다. 군청색 반바지에 빨강색 상의를 입고 잠든 듯 모래밭 위에 누운 아이, 바로 아일란이었다. 주변 해변에서는 함께 소형보트를 탄 5살짜리 형 갈립과 엄마의 시신도 발견되었다.

아일란의 가족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IS)와 쿠르드족 민병대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시리아 북부 소도시 출신이다.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로 탈출해 소형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려했지만, 보트가 전복돼 엄마·형과 함께 숨졌다. 하지만 아일란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시리아는 독재자 알 아사드 대통령을 따르는 정부군과 서방의 지원을 받는 반정부군, 그리고 이슬람국가(IS)까지 얽힌 내전으로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거나 유럽으로 피난하고 있다.

아일란 사고 이후에도 에게해에서 난민선이 가라앉아 5세의 시리아 소녀가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또 그 전날에도 난민 보트 전복사고로 숨진 4세 여아의 시신이 터키 서부 이즈미르주의 에게해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시리아의 난민 사태는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분담해야 할 인류의 몫이다. 난민의 뿌리가 전쟁과 분쟁이고 그 뿌리를 키워온 건 침략주의 자본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 등은 중동을 지배하면서 이권에 따라 국경선을 그었고,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고 이슬람국가(IS) 같은 시리아 반군들을 지원해 지금의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을 양산시켰다.

지난 6월 유엔난민기구는 2014년 말 현재 삶터에서 쫓겨난 난민이 5950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한 해 동안에만도 1390만명에 이르는 새로운 난민이 생겨났고 그 가운데 51%가 아이들이었다.

EU 국경관리기관 프론텍스에 따르면 지난 2012년과 올해 사이에 난민 유입과 망명 신청이 10배나 증가했다. 2012년 EU 회원국에 대한 망명 신청자는 7만2000명이었으나 올 들어 벌써 50만명을 넘어섰다. 또한 EU 통계기관인 유럽통계청(유로스타트)은 올해 2분기에 EU 회원국에 대한 망명신청자가 21만 명을 넘어섰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5% 증가한 것이라고 밝혔다.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유럽 국가들이 속속 국경통제를 강화함으로써 EU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한 ‘솅겐조약’이 위기에 처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시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을 향한 난민탈출이 이어지면서 취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 SNS에 떠돌았던 헝가리 방송여기자와 미국 종군 기자가 난민을 대하는 태도는 극과 극이었다. 아이를 안고 가는 난민 남성의 발을 일부러 차서 넘어뜨려 촬영을 한 헝가리 여기자의 ‘탐욕적 행동’이 있었다면, 생방송 도중 눈 앞에서 쓰러진 만삭의 10대 난민여성을 위해 직접 구조활동을 벌인 미국 NBC방송의 종군 기자의 ‘인도적 행동’도 있었다.

전쟁과 분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아일란의 문제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아일란이 엄마와 함께 꾸어 온 세상을 아일란의 동생들에게 포기하게 할 수는 없다. 난민을 향해 발길질하는 ‘탐욕의 자본’에 맞서 만삭의 난민을 구하는데 앞장선 ‘따뜻한 자본’이 더 강해진다면 아일란이 꿈꾸는 세상도 조금은 앞당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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