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운 온라인뉴스부장 |
요즘처럼 가로수와 낙엽을 생각하는 때는 별로 없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한여름 신록의 기쁨을 주었다가 젊음의 뒤안길처럼 만상을 갖게 해주는 때도 지금이다.
가을나무는 우주의 질서와 함께 삶에 대한 겸허함을 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생각하며 잠시 가을 단상에 젖어본다.
# 다음생명을 위해 몸 불사르는 ‘단풍(丹楓)’
"나는 70여 가지가 넘는 색소를 가지고 있다. 보름간의 화려한 변신을 통해 나무와의 작별을 고한다. 1g당 4.7Kcal 에너지를 만들지만 땅에 떨어져 흙이 되며 다시 나무의 일부가 된다. 이 가을, 생명의 끝이 아닌 다음해의 울창한 숲이 내 몸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다. 나는 끝이 아니라 숲의 시작이다."
낙엽 이야기다.
가을 늦자락, 여기저기 가로수 나뭇잎들이 그동안의 삶에 감사의 춤을 추며 우주에서 지상으로 내려앉는다. 사뿐사뿐 춤사위를 추듯….
여름 뙤약볕에 맞서며 하늘을 향하여 독야청청했던 나뭇잎들이 살랑되는 가을 햇살에도 힘겨워 겨울 채비를 한다.
기온이 떨어지고 햇빛이 줄어들자 나무들은 각자의 생존을 위해 나름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자신의 엽록소를 분해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며 여름날의 푸르름 속 감추어놓은 형형색색 내면의 색소를 토해낸다.
녹색의 엽록소가 분해되면서 잎속의 빨강·노랑 색소가 울긋불긋 옷을 입는다. 단풍이란 이름으로.
잎에 남아있는 영양분은 줄기와 가지로 이동하며 겨울을 견뎌내면 그렇게 봄은 또 찾아오는 것이다.
# 친환경자원으로 재탄생하는 ‘나목(裸木)’
산림과학원은 기존 목재연료와 비교해 부피·발열량·분쇄성이 우수하고 물에 잘 젖지 않아 저장과 이용에 유리한 친환경 연료인 ‘반탄화’를 개발했다. 반탄화 연료는 목재를 무산소 환경에서 200∼300도로 처리해 생산하는 숯과 장작의 중간물질이다.
화목(장작)·칩·펠릿·브리켓 등 일반 목재를 이용한 연료는 열량에 비해 부피가 커 운송과 저장에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만 숯은 같은 부피의 목재연료에 비해 2배의 열량을 가진다. 생명을 다한 나목은 분쇄가 쉽고 물을 거의 흡수하지 않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저탄소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활용될 것이다.
# 뒤척이는 ‘가을의 잔상(殘像)’
가을은 많은 이들을 사색에 빠지게 하며, 인생을 좀 더 관조하게 만든다. ‘나름 철인’이 되며 ‘밤샘 시인’이 돼 시몬을 떠올리며 가을 엽서를 보내게 한다.
"...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레미 드 구르몽의 ‘시몬’)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 낮은 곳으로 / 자꾸 내려앉습니다 /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 그대여 / 가을 저녁 한때 / 낙역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 사랑은 왜 / 낮은 곳에 있는지를" (안도현의 ‘가을엽서’)
최근 OECD는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을 발표했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 등 전체 취업자의 1인 평균 근로시간(시간제 근로자 포함)은 2124시간으로 OECD 회원 34개국 가운데 멕시코(2228시간) 다음으로 많았다. 지난해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독일로 1371시간에 불과했다.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연간 4개월이나 더 일을 한 것이다.
모 정치인이 한때 ‘저녁이 있는 삶’을 찾자고 외쳤다. 수 년이 지난 오늘도 청년들과 조기은퇴 대상자로 내몰린 중년들은 ‘일자리 있는 삶’을 찾아 가을낙엽처럼 뒤척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