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서양덕 기자] 에너지를 연구한 지 어느 덧 39년이 흘렀다. 한평생 에너지만 알고 에너지 기술연구를 위해 일했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동안 연구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에너지 기술연구를 처음 시작하던 당시 세계는 1차 석유 위기(1973∼1974년) 직후 자원 경쟁이 팽배하던 격동의 시기였다. 70년대 중후반부터 국내에도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술 분야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1977년 8월 국가로부터 에너지 기술을 개발해 그 성과를 과학 기술 발전과 정부 정책 수립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임무를 받았다. 국가가 나를 믿고 막중한 임무를 준 이상 목표를 짜고 어떻게 실행할 수 있을 지 중장기 실행계획을 세웠다.
▲1981년 자동차 한 대가 대전 한국에너지연구원(당시 한국동력자원연구소) 에너지 분소 정문을 통과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에너지연구원 |
80년대 초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당시 낙후한 국내 에너지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온 노력을 쏟았다. 이를 위해 대만, 덴마크, 미국, 프랑스, 호주 등 우리보다 에너지기술이 뛰어난 국가의 전문가를 초빙하기도 하고, 세미나를 열어 기술 교류에 중점을 뒀다. 석탄활용기술 워크숍을 열거나 석탄에너지 사용과 환경영향에 관한 연구를 많이 진행했다. 기억나는 사실 중 한 가지 특이한 건 신·재생에너지 기술 연구 개발 논의는 8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점이다. 1988년 국내에서 제1회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세미나가 열렸다. 보일러 효율, 에너지 절약 등 지금 TV, 일상 생활에서 자주 들리는 얘기는 이미 30년 전부터 물꼬가 트였다.
▲1996년 5월 대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당시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에서 자동차연비 및 배출가스 시험 설비 준공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에너지기술원 |
90년대부터는 에너지 수급상황과 에너지시스템 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에 더해 요즘 자주 회자되는 에너지 수요관리 분야에도 중점을 두고 연구를 시작했다. 96년에는 국내에도 자동차 연비와 배출가스를 시험할 수 있는 설비가 생겼다. 당시 국내 각 언론에서 이 사실을 대서특필했던 기억이 난다.
2000년대 초반부터 나는 대체에너지 연구에 속도를 붙였다. 태양광·수소·연료전지 등의 신재생에너지, 이산화탄소 포집·전환 등의 온실가스 처리, 해양융복합 연구 개발에 집중하며 에너지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결과도 좋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연료전지 자동차를 개발할 수 있었다.
다년간 개발한 기술로 중소·중견기업 육성에도 관심을 가졌다. 기술들이 기업의 손을 거쳐 사업화 하고 보급이 확산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함께 일한 기업들이 더욱 성장하고 에너지 기술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품을 개발할 때마다 나 역시 책임감을 느끼곤 한다.
▲2011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은 제주도에 글로벌 신재생에너지 연구센터를 개소했다. 사진제공=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
지구 온난화, 기상 이변, 온실가스로 인한 피해가 지구에 드리울수록 내 연구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2009년에는 지난 27년간 측정한 국내 자원 자료로 신재생에너지 잠재량과 최적지를 찾을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자원지도’를 개발했다. 이 지도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이나 신규사업을 평가할 때 기초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이밖에 국내외 에너지기술 개발 동향을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정부의 에너지 정책 수립을 지원하고 있다. 두 달 전 파리에서 열린 기후총회 결과에 따라 나 역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전경. 사진제공=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
오랜 시간 연구 일을 하다 보니 주위에 좋은 사람과 기업들이 여럿 생겼다. 혼자였다면 결코 버티기 힘들었을 세월이다. 그렇게 내 나이는 40이 다 됐다. 내 힘이 다하는 한 에너지 기술연구에 집중해 더 많은 사람과 연구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