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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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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알파고가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릴 수 있을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03.10 10:56

<세기의 대국> AI 무한 가능성 확인…상상이 현실로

"바둑알은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목적도 목적지도 없이, 출발점도 도착점도 없는 끝없는 생성이다. 장기와 체스의 닫힌 세계와 달리 바둑의 알들은 새로운 이미지의 생명들로 끊임없이 생성된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가 대표 저서 ‘천개의 고원’에서 바둑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이처럼 인간만의 영역으로 일컬어지던 바둑에서 기계(인공지능)가 첫 판을 이겼다. 직관, 유연성, 지적 성장 등 인간만의 강점도 기계가 따라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알파고는 직관적으로 바둑 판세를 읽을 수 있어 사람처럼 기발하고 유연한 대응을 할 수 있다. 또 사람과 달리 지치지도 않고 자율 학습을 24시간 내내 계속해 수개월의 짧은 시간에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둑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AI에 대한 불신이 장애물이던 신산업은 알파고의 승리가 호재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자율주행자동차와 드론(무인항공기)이 대표적인 예다. 기계가 사람처럼 융통성 있게 차량, 항공기, 공장, 금융기관 등을 관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굳어질 수 있다. 산업 각계에서 자동화 바람이 불 수 있다.

교육, 예술, 언론 등 AI와 다소 무관해 보이던 영역도 변화의 가능성이 커졌다. 사람과 구별이 어려운 고차원 AI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만화를 편집하고 기획 기사를 쓰는 것도 아예 불가능한 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석원 소프트웨어 정책연구소(SPRI) 실장은 "IBM의 수퍼컴퓨터 ‘왓슨’이 인간 의사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질병을 진단해내는 등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분야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예술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침투했다. 올해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총 9만7000달러에 팔렸다. 미국 예일대의 인공지능 ‘쿨리타’는 음계를 조합해 작곡까지 해낸다.

이번 대국의 직접적 수혜자는 10억원 이상의 상금을 내걸고 경기를 주최한 구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남은 4번의 경기 동안 알파고가 완승을 하든, 힘겹게 이기든, 애석하게 지든 자사 AI의 탁월함을 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구글은 이미 자사 검색엔진과 스마트폰용 안드로이드 OS(운영체제) 등에 AI를 적극적으로 쓰는 데다 자율주행 차량과 차세대 의료 서비스 등에서도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집중 개발하고 있다.

AI는 사용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이해하는 스마트폰 비서 서비스나 사진에서 특정 사물이나 사람의 얼굴을 찾아내는 이미지 자동 검색 등에 널리 쓰이며 급속히 발전했지만 대중의 불신이 강했다.

특정 상황에서 단순 계산을 반복하는 양(量)적 능력은 좋아도 직관과 융통성 등 질(質)적 측면에서는 사람과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계속된 것이다. AI가 미래 인간의 역할을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에 맞서는 주요 반론이기도 했다.

▲9일 오후 서울역에서 시민이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대결 관련 뉴스속보를 시청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이날 열린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1국에서 흑을 잡고 186수 만에 불계패했다. (사진=연합)


그러나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 9단에 거뜬히 첫 승을 거두면서 이 주장도 옛말이 될 위기에 처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우주 전체의 원자 수보다도 많을 정도로 복잡한 게임이다. 모든 수를 계산하는 식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 관건은 인간의 직관이다. 흑백 돌의 미궁에서 꼭 중요한 수만 가려내 주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직관은 애초 AI에게는 못 넘볼 한계였다. 컴퓨터에 지시 사항을 입력하는 식으로는 직관을 인공적으로 구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둑이 사람을 이기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이유기도 했다.

그러나 컴퓨터가 사람처럼 스스로 학습을 하는 ‘딥러닝’ 기술이 2000년대 후반 개발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율 학습 능력을 갖춘 AI가 바둑의 수 중에서 직접 중요 사례만 골라내 계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알파고는 딥러닝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례다.

알파고의 이런 특성을 잘 몰랐던 이세돌 9단은 애초 5대0 압승을 자신했지만 첫 대국 전날인 8일 구글 측의 설명을 듣고서야 태도를 바꿨다. "완승이 아닐 수도 있어 긴장된다"며 난색을 보인 것이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와 첫 경기에서 마치 현직 최고수처럼 돌을 놓는 알파고 앞에서 기권패를 선언했다. 승패를 갈랐던 알파고의 102번째 수는 ‘프로기사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수’로 꼽혔다 .

하워드 유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교수는 "알파고의 승리는 인간의 우위가 점점 약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알파고의 승리는 게임체인저"라며 "이세돌 9단이 남은 2∼5국을 이기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이 알파고가 학습하고 전략을 세운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 마인드를 넘어서는 AI의 미래를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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