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카와 데츠로 미쓰비시 자동차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국토교통성에 제출한 연비 테스트 자료에서 연비를 실제보다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한 부정한 조작이 있었다며 고객과 주주들에게 죄송하다고 밝혔다.
연비 조작을 통해 생산한 자동차 수는 자사의 ‘eK 왜건’과 ‘eK 스페이스’, 그리고 닛산 자동차용으로 생산한 ‘데이즈’와 ‘데이즈 룩스’ 등 4종에 걸쳐 총 62만5천 대에 달한다.
최근 도시바가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수년간 회계부정을 저지른 사실이 발각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일본 대형기업의 부정행위가 불거지면서 과거 기업들의 거짓말과 늑장대응, 모르쇠 발표 등이 재현될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 3번 반복된 거짓말…‘전범기업’ 비판도
이번 연비 조작 이전에도 2000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결함·리콜을 은폐한 전력이 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2000년 일본 정부의 클레임 정보 조사에 리콜 안건 수백여 건을 제외하고 상품정보 등만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홍역을 앓았다.
2002년에는 트럭 앞바퀴 결함으로 주행 중 바퀴가 빠지면서 운전자와 바퀴에 치인 행인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수사당국 조사에 앞서 바퀴축 결함과 관련해 허위보고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정비 불량을 사고 원인으로 몰았던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일본 검찰은 미쓰비시자동차 전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을 허위보고 혐의로 기소했으나 정작 재판에서는 일부 무죄판결이 나왔다.
이 같은 선례 때문에 20일 기자회견장에서는 "미쓰비시의 ‘은폐 체질’이 변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일과는 무관하지만 미쓰비시자동차의 모회사인 미쓰비시는 연비조작 사건이 아니더라도 동아시아 일대에서 ‘전범기업’으로 이미지가 좋지 못하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과 중국에서 노동자를 강제징용해 노동력을 착취한 혐의로 아직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배우 송혜교가 전범기업이라는 이유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모델 제의를 거절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 日기업 윤리의식 도마에…"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문제"
미쓰비시 이외에도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기업의 부정 스캔들은 줄을 이었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지난해 드러난 도시바의 회계 부정 사건이 있다.
일본의 유명 전자업체인 도시바는 2008∼2014년 사이 이익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했다가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주가가 반 토막 나고 회사 신용등급도 투기등급으로 강등됐다.
앞서 2011년에도 올림푸스에서 분식회계 및 내부고발자 해고가 발생해 전 세계적인 충격을 안겼다.
올림푸스는 증권투자 손실을 감추기 위해 회계부정을 저질렀으며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한 외국인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해고하기도 했다.
2010년에는 도요타자동차 리콜 파문, 2005년 화장품 제조업체 가네보의 분식회계 파문이 줄을 이었다.
특히 일본 최대 식품업체였던 유키지루시는 2000년 1만3천명이 넘는 식중독 환자를 발생시키고도 3개월 후에야 늑장 발표해 논란을 불렀다.
이듬해에는 자회사인 유키지루시 식품이 수입산 쇠고기를 국산인 것처럼 위장했다가 법적 정리 수순을 받았다.
여기에 미쓰비시자동차의 스캔들까지 겹치면선 일본 기업의 윤리의식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AFP 통신은 최근 다카타 에어백 폭발 사고로 11명이 숨진 사실과 도시바 회계부정 사건을 언급하면서 최근 일본 기업의 스캔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미쓰비시자동차의 이전 은폐 사실을 언급하며 ‘(이번 연비조작 사건은) 최신판 자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일본 기업에서 윤리 문제가 거듭 불거지는 것은 상명하복식 조직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쓰히로 구니사와 자동차 평론가는 마이니치 신문에 "상부에서 내건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기에 이를 맞추려고 부정하게 손을 댄 것 아니겠냐"며 "부정을 알아챈 사원이 이를 지적할 수 없는 기업 문화가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