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가 지배하고 99.9%의 목소리는 외면 받는 경제 현실, 우리의 자화상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50년간 압축 성장을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수출 대기업집단 중심의 정책 고착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와 무분별한 사업확장 문제는 간과돼 왔다.
그 결과 사업체 기준 0.1%에 불과한 대기업이 경제 전반을 지배하게 된 반면, 중소기업‧소상공인은 대기업계의 논리에 밀려 성장의 기회마저 잃어버리고 경영환경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15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포용적 성장 방향’을 제시하면서 장기적 성장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의 과실이 폭넓게 공유돼야 하고, 정책형성 과정에서도 통합적 접근방식을 통해 다양한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대기업 중심의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최근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상향하고, 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만 보더라도 중소기업‧소상공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으며, 대기업계의 이해관계가 우선시 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대기업집단 지정제도의 본질은 과도한 경제력집중 억제와 일감몰아주기 등 불공정행위를 제한하여 국민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산업 투자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라는 명분하에 대기업집단 자산규모 기준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대폭 상향을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해 65개 대기업집단 중 절반이 넘는 37개 집단, 618개 계열사가 상호출자, 순환출자 등의 제한에서 벗어날 예정이며, 소상공인들은 당초 시행령 개정 취지와는 달리 대기업이라는 이름을 뗀 거대 기업들이 영세 골목상권으로의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을 터준 것으로 변질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에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부터 영세 소기업‧소상공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는 대기업계의 목소리에 밀려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창업주의 정신을 잃어버린 재벌 2‧3‧4세들의 탐욕을 견제하고, 시장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이 절실하다.
적합업종‧품목 100여개 중 음식점‧동네빵집 등 40∼50여개 생계형 업종에 대한 법제화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산업 구조조정 방안 역시 대기업 지원을 위한 11조원 규모의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 조성과 중소기업 성장동력 확충을 목적으로 하는 신용보증기금의 지급보증까지 포함된 현실이다.
부실 대기업에 대한 지원에 앞서 선의의 협력 중소기업 피해 최소화를 위해 하도급대금 매출채권도 임금채권과 준하게 우선적으로 변제하는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노동시장의 개혁 없이 최저임금을 상승 시키려는 움직임도 중소기업계를 옭죄고 있다.
최저임금이 2000년 이후 연평균 8.7%, 물가상승률의 3.4배 수준으로 가파르게 인상되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가 200만명에 달하고, 산입범위‧적용범위‧대상 등 30년간 변화 없는 낡은 제도로 인해 법과 현실의 괴리가 커져만 가는 근원적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
더욱이 올해 9월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에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음식‧선물 등에 대한 일률적인 금액 제한이 포함돼 있어 농축수산물 유통, 화훼, 음식점업계의 피해가 예상되며,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침체를 가속화 시킬 수 있다는 700만 중소‧소상공인과 농림축수산인의 간절한 외침은 너무나 쉽게 외면 받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도 변화가 필요하다. 작지만 간절한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으며, 영세한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제도는 결국엔 구성원 간 이중구조를 고착화시켜 사회의 갈등만 심화 시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새로운 시대, 변화하는 환경에 걸맞은 따뜻하고 균형 잡힌 정책으로의 전환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