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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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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영 칼럼] 전문가 대 전문가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6.08.22 16:50
천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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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누진제 문제를 다룰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는 당정의 발표 후 휴대전화에 저장된 지인(에너지 전문가) 몇몇에게 전화를 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누진제 개편을 외치고 있어, 아무래도 현역 의원들이 TF에 참여할 것 같아서였다.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전기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누진제가 정치 문제화 되면 정쟁의 재료만 될 뿐 결론은 못 내리게 될 것"이라며 현역 의원 배제를 주장했고, 경제를 전공한 전력경제 전문가들은 "결국엔 법을 통해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면 아예 처음부터 현역의원이 참여하는 게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전기학회를 끌고 있는 한 전문가는 또 "TF에 전기 전문가는 없고, 경제와 NGO 관계자만 득실거린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과거 정치인이 참여해 유야무야 된 일들을 수차례 목도한 바 있는 나 역시 FT에 현역 의원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 전기 전문가의 우려에 더 귀가 쏠려 있었다. 며칠 후 출범한 FT에는 전기 전문가의 ‘우려’대로 현역의원이 다수 포함됐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 달리 통화한 전기 전문가 두 명 그리고 현역의원 참여를 수긍한 전력경제 전문가도 FT에 이름을 올렸다.

TF 명단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과의 통화를 떠올려 봤다. 속내까지 속속 들이 알 순 없겠지만, 전기 전문가의 생각은 누진제 문제는 전기의 생산과 유통까지 모두 엔지니어의 손과 머리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라 ‘표를 먹고 사는 정치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얘기로 이해됐다.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등 에너지 현안이 거의 20년 표류한 전례를 떠올리니 이들의 지적에 머리가 끄덕여졌다.

그러나 전력경제 전문가의 얘기 역시 고개를 가로 저을 수만은 없었다. 분야 전문가들이 제 아무리 합리적인 안을 내놓는다 해도 결국 입법과정에서 퇴짜를 맞는다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어 이해와 설득 과정을 생략하기 위해서라도 처음부터 현역의원과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특별법 제정 이후 해결된 전례를 상기하니 이 역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전기요금 누진제. 분명 전문 영역이다. 누진단계를 줄이고, 누진율만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전기요금은 전력정책의 산물이기 때문에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전력 유통 전반의 메커니즘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제대로 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기 즉 전력정책은 경제와 직접 맞물려 있다. 과거처럼 전기가 동력원에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아 경제로까지 그 영역이 확장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국민들 눈에는 집권과 개인의 영달에만 혈안이 된 무능하고 욕심 많은 사람들로 보이는 국회의원들의 가장 큰 역할은 법을 만드는 일이다. 입법 전문가들이라는 얘기다.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이해와 개인의 욕심 때문에 맡겨진 역할을 망각하거나 등한시하고 있는 게 문제일 뿐, 주어진 역할은 그렇다는 것이다. 

현역의원 다수가 참여한 TF는 연말까지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자신들이 나서서 구성했고, 팀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니 합의한 안을 정치와 결부해 여반장처럼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TF에 참여하고 있는 현역의원들에게 바랄 것은 한 가지, 전문가가 되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말 TF가 대책을 내놓았을 때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기와 전력경제 전문가들의 전문가적 견해와 판단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딱 그것이면 된다. 통속적인 수사 같지만 전기요금 누진제는 여야 모두에게 입법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역할을 새롭게 각인시켜 줄 다시 없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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