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장 |
마라케시 기후총회(COP22)가 11월19일 폐막됐다. 한국은 물론 외신도 마라케시 총회 결과를 그다지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2018년까지 파리협정 이행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세부 작업일정과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라 이번 기후총회는 예상대로 별 쟁점이 없이 파리협정 이행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일정이 수립됐다. 다만 본 협상과 별개로 기후행동에 적극 참여를 약속하는 그룹별 움직임이 눈길을 끌었다.
주 정부나 지역 연대체인 ‘2℃ 미만 연대’는 회원 수를 165개로 확대했고 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의 고위급 회담인 ‘기후 취약 포럼(CVF)’은 2030년에서 2050년 사이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달성하자는 비전을 발표했다. 캐나다, 독일, 멕시코, 미국은 2050년까지 야심찬 기후행동계획을 선도적으로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심층 탈탄소화를 위한 미국 21세기 중반 전략’은 차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폐기될 것이 확실해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았다. 2050 장기전략과 관련해 장기 탄소중립적 전환 경로를 추구하는 ‘2050년 경로 플랫폼’이 출범했는데 여기에 22개국, 15개 도시, 17개 주와 지역, 196개 기업이 서명했다. 코웨이, LG화학, LG생명과학 3개의 국내 기업이 이 모임에 합류했다. 국제 기후행동에 국내 기업의 참여가 매우 소극적인데 변화의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기후총회와 함께 열린 부대행사도 파리총회는 물론 과거 총회에 비해 축소됐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기후, 에너지, 보건, 식량 등 다양한 국제기구와 협회들이 앞다퉈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강하게 입장을 발표하던 파리총회의 열띤 분위기는 없었다. 유연성과 상향식(Bottom-up) 속성을 가진 국가별 기여방안(NDC)을 실행하는 체제인 파리협정이 출범하면서 국가별 다양성이 크게 존중되고, 그것이 부대행사 장소의 풍경도 바꿨다.
그 와중에 UNEP가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국가별 기여방안을 이행하더라도 지구 평균 기온은 2.9~3.4℃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기온 상승을 2℃보다 낮게 억제하려는 파리협정의 목표와는 격차가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내놔 주목을 받았고, 개도국이 NDC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다양한 각도에서 논의됐다. 에너지 분야의 감축과 관련해선 작년 파리총회 때 국가, 기업, 지자체가 많은 계획과 서약을 쏟아낸 탓인지 새로운 계획으로 주목받은 것은 별로 없다. 상대적으로 도시, 지자체, 여성, 노동조합, 아프리카 국가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펼쳤다.
기후총회 기간 중에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당선되면서 세계의 관심과 전망은 마라케시 기후협상보다 트럼프 행정부가 파리협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쏠렸다. 당선자 신분인 트럼프가 후보 시절에 비해서 국제관계나 기후협상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강조하고 있지만 과거 공화당 행정부의 태도, 현재 공화당 입장 그리고 트럼프와 트럼프 핵심 참모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파리협정을 이끌던 미국의 리더십은 사라지고 미국이 향후 기후협상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이 파리협정을 탈퇴할 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별 기여방안을 존중하는 느슨한 체제인 파리협정은 미국과 중국의 리더십, 후퇴 방지 시스템, 기후재정 같은 요소로 인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미국이란 리더십의 한 축이 빠져나가고 또 미국의 기후행동이 후퇴하면서 동조 국가들이 나타나면 전진만 하도록 설계된 체제(ratchet mechanism)도 약화될 것이다.
또한 가장 큰 손인 미국의 태업으로 기후재정 확보에 경고등이 울릴 것이다. 미국의 입장 변화는 파리협정의 핵심적인 요소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파리협정이 취약해질 수 있다. 마라케시에서 세계 지도자들이 비가역적인 기후행동을 강조했듯이 기후행동의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기후행동이란 거대한 항해는 한두 개의 돌발변수로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항해 속도는 일시적으로 느려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충분히 그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