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일 변호사 |
헌법으로부터 도출되는 행정법의 일반원칙으로는 신뢰보호의 원칙, 평등의 원칙, 비례의 원칙 및 적법절차의 원칙 등이 있다. 이 중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기관의 말과 행동에 대해 국민이 신뢰를 갖고 행위를 한 경우 그 국민의 신뢰가 보호가치 있는 경우에는 그 신뢰를 보호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행정처분이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경우에는 위법하게 된다. 최근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의 배출권거래제와 관련하여 정부와 마찰음이 발생하고 있다. 이를 신뢰보호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열병합 발전이란 전기 생산과 열 공급을 동시에 진행하는 발전을 말한다. 즉 고온의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함과 동시에 물을 가열하여 그 온수로 난방을 하는 방식이다. 열병합발전 설비에 대해 독일을 비롯한 EU는 초고효율 에너지설비로 인정하고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집단에너지 사업이란 주로 열병합발전소, 열전용보일러, 자원회수시설 등 1개소 이상 에너지 생산시설에서 생산되는 복수의 에너지(주로 열과 전기)를 주거·상업 또는 산업단지 내 다수의 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공급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최근 집단에너지 사업자들 및 이들로부터 열(스팀)을 공급받는 사업자들은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을 찾아 "배출권거래제 과소할당 개선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배출권거래제의 주관 부처가 환경부에서 기획재정부로 이관되면서 정부 차원의 추가할당은 해줄 수 없다며 산업통상자원부에 할당량을 재조정하도록 하는 등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열병합발전 사업자들과 이들로부터 열(스팀)을 공급받는 사업자들은 2014년 정부가 집단에너지 부문의 배출권을 과소할당하였다고 주장하며 이를 개선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다. 당시 정부(환경부)는 열병합발전시설이 온실가스 저감시설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 제도 개선에 나서기로 약속하였다. 정부는 올해 2월 완료 된 연구용역 결과 열병합발전시설이 원천적인 온실가스 저감시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지원 근거를 담은 배출권거래제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아울러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조정 및 취소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에도 업계는 정부가 집단에너지 업계에 약속했던 ‘감축률 조정 및 배출권 추가할당’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부가 큰 틀에서 집단에너지 효용성을 인정하고, 지원 근거를 마련했으면서도 실질적인 할당 안 마련이나 감축률 조정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법원은 98두7343 판결에서 일반적으로 행정상 법률관계에 있어서 행정청의 행위에 대하여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첫째 행정청이 개인에 대하여 신뢰의 대상이 되는 공적인 견해 표명을 하여야 하고, 둘째 행정청의 견해 표명이 정당하다고 신뢰한 데에 대하여 그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없어야 하며, 셋째 그 개인이 그 견해 표명을 신뢰하고 이에 어떠한 행위를 하였어야 하고, 넷째 행정청이 위 견해 표명에 반하는 처분을 함으로써 그 견해 표명을 신뢰한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는 결과가 초래되어야 하고, 어떠한 행정처분이 이러한 요건을 충족할 때에는, 공익 또는 제3자의 정당한 이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신뢰보호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로서 위법하게 된다고 판시하였다.
최근 집단에너지 사업단의 배출권 거래와 관련한 정부의 행위가 행정법상 신뢰보호의 원칙에 위반하여 위법하다고 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배출권거래제 과소할당 개선을 하겠다는 약속 이후에 이를 신뢰하고 사업을 시작하거나 투자를 하였다는 등 요건을 갖추었는지, 정부 결정이 이전의 약속에 반하였는지에 대한 규범적 판단이 필요하다. 신뢰보호의 원칙의 요건을 갖추었는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사업자들로서는 정부의 약속을 신뢰하고 경영적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정부는 정책을 밑고 따라온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해온 집단에너지 사업자들의 신뢰를 지켜 우리나라 집단에너지 사업이 더욱 활성화 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