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 |
"권력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것은 기업의 잘못이지만 대통령 측근의 문제까지 함께 책임지라는 것은 가혹하다." "대통령의 뇌물죄를 입증하기 위해 무리하게 기업을 공범으로 몰아가는 수사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조사 중인 특검이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시작으로 재계를 향해 칼을 빼 든 것에 대해 재계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사실상 삼성그룹을 비롯한 주요 기업들은 특검으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세계 경제 흐름이 급변하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경제 현황을 점검하고 전략을 세워야할 시점에서 대외 활동에 심각한 차질을 빚고 있어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에도 큰 손실을 안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첫 수사대상이 된 삼성그룹의 경우 특검이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했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로 이어질수 있어 자칫 잘못하면 삼성의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경영공백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제 이 부회장은 주요 투자결정을 진두지휘하며 공격경영을 전개해왔다. 지난해 11월2일 삼성이 시스템 반도체 생산 능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1420억원) 이상을 투자한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이 부회장이 홀로 미국 출장을 다녀온 직후였다.
국내기업의 해외기업 인수합병 사상 최대 규모(80억 달러)로 평가받고 있는 삼성의 미국 전장기업 하만 인수 역시 이 부회장이 깊숙이 개입한 빅딜이었다. 이 부회장은 미국 출장에서 하만 경영진과 직접 만나 인수협상을 담판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출국금지 조치로 인해 다보스 포럼 참석이 불투명하다. 이번 다보스 포럼은 미국의 트럼프 정부 출범으로 인해 보호무역주의 대응을 위한 각국 참가자들의 정보 교환과 네트워크 구축 등이 전개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기업들은 특검 후폭풍으로 향후 정책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
재계 한 관계자는 "보호무역 확산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져 CEO들의 해외 비즈니스가 중요한 시기인데 주요 기업 총수들이 특검 수사에 발이 묶여 대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까 무척이나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계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 및 사드 경제보복 등으로 기업들의 사업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정농단 사태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특검의 수사는 존중하지만, 경영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기업옥죄기식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특검 조사가 대기업들로 향하면서 향후 미국 정부가 이들 기업에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FCPA는 기본적으로 미국 회사가 해외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거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것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지만 미국에 현지법인을 둔 외국 회사를 처벌하는 경우도 많다. 2008년 뇌물 스캔들에 휘말린 독일 지멘스가 미국 법원에 8억 달러의 벌금을 낸 게 대표적이다. FCPA 처벌을 받은 기업은 천문학적 과징금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조달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된다. 미국 내 기업과의 인수합병(M&A)도 힘들어진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의 경우 FCPA를 최근 매우 공격적으로 적용하고 있어 수사 대상 기업들이 미국에서도 상당한 법적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며 "사실관계가 철저히 밝혀져야겠지만 ‘아니면 말고’식 수사는 국가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경제신문 최용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