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최용선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16일 뇌물공여 및 횡령, 위증 등 혐의를 적용해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뇌물공여 액수는 430억원으로 산정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수사선상에 오른 재벌 총수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처음이다. 구속 여부는 18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결정된다.
특검은 이 부회장의 혐의가 소명된다고 보고 12∼13일 22시간에 걸친 밤샘조사 후 사흘 만에 이같이 결론 내렸다. 매출 300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의 경영 공백, 경제적 충격 등 신중론도 제기됐으나 특검은 유사 사건 전례 등을 고려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삼성이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제3자(최순실씨)를 후원하는 방법으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 이득을 챙겼다고 판단했다. ‘박근혜 대통령-최순실-삼성그룹’으로 연결되는 제3자 뇌물 혐의 구성 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성립한다는 논리다.
삼성은 최씨가 실질적으로 지배한 독일의 유령 회사인 비덱스포츠(코레스포츠의 후신)에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35억원 가량을 송금하고 비타나V 등 명마를 삼성전자 명의로 구입해 최씨 측에 제공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또 최씨가 설립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낸 금액 중 가장 많은 204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특검팀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을 의결한 것을 제3자 뇌물죄의 ‘대가 관계’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로 판단했다. 이와 함께 2015년 5월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의 초동대처 미흡과 관련한 보건복지부의 행정처분이 늦어지는 것에 대해 또 다른 ‘대가’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특검의 발표 직후 삼성그룹은 곧바로 "특검의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삼성그룹은 "대가를 바라고 지원한 일은 결코 없다"며 "특히 합병이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했다. 아울러 "법원에서 잘 판단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재계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많은 우려와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총수가 구속 위기에 몰리게 되자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고 있다, 재계는 특히 이 부회장의 구속수사로 삼성은 물론, 우리 경제의 국제신인도가 크게 추락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무역협회 등은 입장 자료를 통해 이 부회장에 대한 불구속 수사와 사법 당국의 신중한 판단을 요구했다. 경총은 "이건희 회장이 3년째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마저 구속된다면 삼성그룹은 심각한 경영공백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의 구속이 가뜩이나 얼어붙은 우리 기업인들의 ‘경제하려는 의지’를 더욱 꺾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사법당국의 신중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특검의 다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SK그룹, 롯데그룹 등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심스러운 분위기인 만큼 이 부회장 영장 청구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지 못한 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반응만 보이고 있다
한편 특검팀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이목은 법원으로 쏠리고 있다. 통상 법원은 범죄가 소명됐는데, 혐의를 받는 인물이 도주나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영장 발부의 기준으로 삼는다. 삼성에 칼끝을 겨누고 그 이례적으로 수장의 영장을 청구한 만큼 특검팀은 뇌물과 대가가 오간 정황, 또 최순실과 삼성 관계에 대한 결정적 물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SK와 롯데 등 이번 사안과 얽힌 다른 대기업과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특검팀은 조만간 SK와 롯데 등 다른 대기업으로 뇌물 의혹 기업 수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