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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원안위, 처절하게 자성해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2.14 15:45
천근

▲천근영 전국부장

[데스크 칼럼] 원안위, 처절하게 자성해야

"슬픈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가 있다. ‘설마’ 하고 걱정하던 일들은 간혹 현실이 돼 우리네 인생살이를 힘들게 옥죈다.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이나, ‘오래된 어른’으로 살아온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이런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머피의 법칙에 머리를 끄덕이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원자력업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설마’가 현실이 됐다. 월성원전 1호기 계속운전 취소 판결 얘기다.

지난주 서울행정법원 행정 11부는 월성 1호기 인근 경주시 주민 2000여명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를 상대로 낸 ‘월성원전 1호기 계속운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법원의 판결에 제일 당황한 것은 물론 원안위다. 결국 원안위는 14일 항소했다

항소를 하지 않으면 그대로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은 취소되기 때문이다. 들어본 적도 없고, 처음 접한 내용이라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어 "행정법원이 원전 계속운전 여부를 판결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몇몇 전문가는 "행정절차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물론 대다수의 원자력 전문가들은 "법원이 시류에 휩쓸린 판단을 한 것 아니냐"며 "인허가 과정에서 전혀 문제가 없던 원전의 계속운전을 취소하라는 판결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일부는 "원안위가 뭘 했는지 모르겠다"며 비판의 목소리도 들렸다.

답답한 것은 이번 소송에 임한 원안위의 자세다. 원안위은 이미 지역주민들이 소송을 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준비기간도 충분했다. 그러나 판결문에는 원안위의 준비 부족이 여기저기에서 드러난다. 월성 1호기 운영변경 허가사항 전반에 대한 ‘변경 내용 비교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것과 원자력안전위원회 과장이 적법하지 않게 허가사항을 전결로 처리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상 위원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위원에 대한 소명 부족 등이 그것이다.

한 원자력 전문가는 "변경 내용 비교표가 제출됐으나 해석상의 이유로 지적한 것이고 그렇다면 제출하라고 하면 될 일이지 허가를 취소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또한 그는 "전결이란 기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사소한 사항에 대해서는 실무진에서 최종 처리를 하라는 의미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도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 봉착토록 한 것이다. 물론 정부나 원안위 그리고 한수원 심지어 판결을 내린 재판부까지도 월성 1호기 계속운전이 무효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이번 판결은 기술적인 게 아니라 절차상의 문제를 적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원의 취소 판결은 행정청을 한 번 더 보라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얘기다.

원안위는 원전과 원전시설의 최고기구다. 여기서 심의하고 의결하는 게 최종 판단이다. 이런 기관이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이 낸 소송에서 일부이지만 패소했다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 변명이 오히려 구차하다. 삼심제 덕분에 원안위는 자성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들이 반원전을 공개적으로 밝힌 상황이다. 상황이 결코 좋지 않다. 원안위마저 허둥거려서는 원전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원전은 원전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에너지정책의 핵심이다. 두 번 이런 사태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실수는 한 번이면 족하다. 그 한 번의 실수로, 한수원은 어찌됐든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수천억원의 손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게 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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