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20일 총수부재 4일째를 맞았다. (사진=에너지경제신문DB,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최용선 기자] 총수의 부재라는 초유의 사태에 빠진 삼성그룹의 경영 전반이 올스톱되면서 혼란에 빠졌다.
19일 삼성과 재계에 따르면 창립 79년 만에 삼성그룹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이다. 그룹 경영의 구심점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어서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 결정을 비롯해 어떤 식으로든 경영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3년째 와병 중이고, 이 부회장이 지난해 10월 말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오르면서 ‘이재용의 삼성’을 본격화하려는 시점에 구속이라는 악재를 맞게 된 상황이어서 삼성그룹 전반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관심사는 공석이 된 총수대행에 누가 올라서느냐이다. 지난 2008년 당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물러나면서 이수빈 당시 삼성생명 회장이 대신한 바 있다. 최고원로였던 이수빈 회장은 신년하례식, 청와대 간담회 참석 등 총수 역할을 대신했다.
현재로서는 ‘2인자’로 불리는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권오현 부회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이 부회장의 동생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그룹 전반을 경영할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삼성 측은 "아직까지 누가 총수대행을 할 지는 결정된 것이 없다. 긴박한 상황인 만큼 제3의 인물이 컨트롤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현재로서는 각 계열사 사장들의 역할이 더 커지고 그룹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관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전자 계열사 전반은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총괄해 관리할 예정이다.
지난해 청문회에서 이 부회장이 해체하겠다고 밝힌 미래전략실은 당분간은 해체 수순을 밟지 않는다. 특검 수사라는 돌발 악재가 터지면서 잠정 연기가 불가피하다. 당장 미전실 법무팀이 외부 로펌과 긴밀하게 협력해 이 부회장의 방어권을 대리하는데다 재판도 대비해야 할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회장에 대한 1심 선고 때까지는 미래전략실을 그대로 둬 경영공백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사장단협의체와도 협업하는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당분간 쇄신안 마련과 미래전략실 해체는 미룬 채 급한 이슈를 해결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라며 "1심 선고가 되는 5월 말 이후에 다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은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뇌물을 주거나 부정한 청탁을 한 일이 없다.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사장단 인사나 조직개편 역시 기약을 할 수 없게 됐다. 매년 3월에 해온 상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도 언제 시행될지 불확실하다.
이러한 가운데 삼성은 시급한 현안은 정상적으로 챙긴다는 계획이다.
오는 3월 말 최초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략 스마트폰 ‘갤럭시S8’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는 것이 상반기 큰 과제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이 배터리 결함으로 단종된 이후 소비자 신뢰, 시장점유율 면에서 충격을 받은 터라 차기작의 성공에 삼성전자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주회사 전환 등 지배구조 개편도 당분간은 어렵다. 삼성전자 지분율이 낮은 이 부회장 입장에서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지배구조 개편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지만, 우선 재판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말 삼성전자는 이르면 올해 상반기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답을 내놓겠다고 밝혔지만, 현재로서는 논의 자체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미 삼성은 2014년부터 순환출자 구조를 끊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해왔다. 삼성전자 인적분할과 지주회사 전환은 그 최종 단계로 거론된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이 특검에 의해 기소되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는 2년 여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기간 삼성은 최대한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높을 전망이다. 인사 폭을 최대한 줄이고 과감한 투자도 자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규 인원 채용도 마찬가지다. 현상 유지 차원의 의사결정은 이뤄지겠지만 공격적인 경영 판단은 보류할 것이란 전망이다.
삼성 고위급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내려지려면 최소 2년은 걸리지 않겠느냐"며 "삼성은 이 기간을 고스란히 허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 사이의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법행위의 결과물로 인정돼 국민연금과 삼성그룹이 손해배상 소송 등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동시다발적인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며 "이 경우 상당히 오랜 기간 법적 공방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