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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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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CEO 머스크의 도박?...전기차 이어 'ESS시장' 장악 시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3.15 07:23

머스크, 호주 재생에너지發 전력난 ESS로 해결

▲(사진=A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영화 ‘아이언맨’의 모델로 유명한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말콤 턴불 호주 총리 간의 트윗에 전세계의 눈길이 쏠리는 모양새다.

문제의 발단은 호주의 기록적인 폭염에 따른 정전 사태였다. 지난달 최고 기온이 47도까지 올라간 호주는 기온 측정을 시작한 157년만에 가장 무더운 여름을 보냈다. 특히, 남호주 일대는 최근 폭풍과 폭염 등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전기요금 폭등 문제를 겪고 있다. 올 여름 남호주의 전력 요금은 지난 두 달 간 메가와트시 당 1만3440달러까지 치솟았고 146.29달러까지 폭락하기도 하는등 극도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이런 가운데 머스크 CEO는 시간당 100메가와트시(MWh)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1kWh 당 250달러의 비용으로 100일 안에 호주에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심지어 기한을 어길 경우에는 어떤 대가도 받지 않겠다고 자신했다.

호주 멜버른에 위치한 싱크탱크 그래턴연구소의 토니 우드 에너지 디렉터는 "머스크의 발언은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미친 생각들이 시장의 판도를 바꾸곤 한다"며 ESS시장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했다.


◇ 정전은 재생에너지 탓? 남호주 에너지 소비량 40% 재생에너지에 의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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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즈메이니아, 남호주가 재생에너지 혁명을 이끌고 있다. 태즈메니아, 남호주, 서호주, 빅토리아, 뉴사우스웨일스, 퀸즐랜드.(단위=시간당 기가와트, 주황=화석연료, 파랑=재생에너지) (표=호주 청정에너지 위원회/블룸버그)

남호주는 전체 에너지 소비량의 40%를 풍력과 태양에너지 등 재생에너지에 의존하고 있고, 이 비율은 다른 주들보다 훨씬 높다. 이런 상황에서 남호주 일대에 일련의 정전 사태가 발생하자, 재생에너지가 값은 비싸지만 공급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재확인했다며 호주 전체의 에너지정책에도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수성향의 연방정부는 남호주 주정부 쪽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실패한 책임을 묻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불안한 전력공급구조 가 기업들의 운영에도 어려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남호주 최대 전력 소비자이자 세계 최대 광산업체 BHP빌리턴의 한 광산은 지난해 9월 정전사태 때 2주 동안 가동이 중단됐으며, 알코아의 알루미늄 제련소도 최근 전력 중단으로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말콤 턴불 연방 총리는 지난달 "남호주의 전기는 호주 내에서 가장 비싸지만, 안정적인 공급은 최하 수준인 만큼 우리가 남호주의 방법을 따를 수는 없다"며 "일자리를 위해서도, 기업과 가정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과거 턴불 총리는 신재생에너지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율을 50%까지 올리겠다는 야당을 겨냥한 바 있다. 그는 이어 기존에 청정에너지 분야에만 지원되던 보조금을 차세대 석탄발전소 건설에도 쓸 수 있도록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신재생에너지 정책확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남호주 주정부는 전력공급 불안정성 및 잦은 정전과 관련해 전력 공급자들의 송배전과 관련한 규정 탓으로 돌리고 있다. 지난 8일에도 일부 가스발전소가 전력이 남아돌았지만, 돈이 더 들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공급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남호주 주정부는 이웃 주와 서로 전기를 제공할 수 있는 설비를 새로 갖추고 예비 설비도 확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 "ESS 시장, 전기차 대비 2배 빠른 발전 속도 보일 것"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며 발을 빼려는 호주 정부의 움직임을 머스크가 돌려세울 수 있을까. 리튬이온배터리 기술의 발전속도를 살펴보면 그간 큰 걸림돌로 작용했던 송전 문제는 거의 해결된 상태다.

지난해 테슬라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세 달만에 80MWh의 ESS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100일만에 100MWh는 좀 더 도전적인 일이긴 하지만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1kWh 당 250달러라는 비용은 실현가능할까. 대형 리튬이온배터리팩의 가격은 최근 절반 수준으로 낮아졌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loomberg New Energy Finance·BNEF)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배터리팩은 1kWh 당 599달러에 판매됐으나 배터리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지난해 273달러 수준까지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BNEF는 테슬라의 초대형 배터리공장 기가팩토리가 완공되면 배터리팩의 가격은 240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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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2030년 미국, 한국, 중국의 배터리 가격 하락 전망치. 지난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는 속도(미국 중국 5GWh, 한국 3GWh)에 근거한 것이다.2016년 미국-240달러/KWh, 중국-185달러/KWh 한국-184달러/KWh 2030년 한국-74달러/KWh 미국-70달러/KWh 중국-64달러/KWh (단위=메가와트시, 표=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


이처럼 배터리 업계가 발전하고 있는 속도를 고려할 때, 호주 전력시장을 향한 머스크의 베팅은 도전적이긴 하나 잃을 것이 없다는 평가다. 오히려 ESS의 유용성을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테슬라의 전기차는 물론 가정 및 기업용 ESS시장을 동시에 장악 할 수 있는 남는 장사라는 평가다.

또 많은 투자자들이 ESS의 상업화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세간의 이목을 끄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 남호주 지역의 프로젝트에 테슬라가 이름을 올리는 것은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설령 머스크가 호주와의 계약을 따내기 위해 이윤을 포기했다 치더라도, 테슬라의 주주들은 장기적인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단기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차량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에 조급해하지 않아온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 "테슬라 남호주서 돈 벌 수 있다"…ESS, 차익거래 통해 돈 버는 구조

그렇다면 테슬라는 이번 남호주 ESS 프로젝트를 통해 돈을 벌 수 있을까. 남호주의 현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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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의 전력 가격이 일일평균가격을 넘어설 때마다 ESS는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다. (선=일일 차익거래 차액, 가격 주기) (표=블룸버그 개드플라이)


ESS는 전력시장의 변동성을 통한 차익거래에서 이윤을 얻는 구조다.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개드플라이 칼럼니스트는 "전력을 살 때와 판매할 때의 가격차이가 크고 ESS 자체의 비용이 충분히 낮다면 이익을 실현할 수 있는 상당히 간단한 거래"라고 설명했다.

남호주 전력시장의 높은 변동성이 ESS 사업에 딱 들어맞는 이유다. 한편 테슬라의 배터리팩 가격이 kWh당 250달러라는 것은 총비용 중 절반에 불과할 뿐 플랜트 건설 비용이나 전력망 연결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실제로 지난주 호주 파이낸셜리뷰과의 인터뷰에서 테슬라 부사장이자 머스크의 사촌인 린든 라이브는 남호주 ESS 프로젝트의 실질 비용은 kWh 당 400달러에서 600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략적으로 계산했을 때 ESS 운용비용은 전력으로 나가는 요금 외에 1MWh 당 117달러에서 155달러까지 소요된다. 때문에 고점이 1MWh 당 155달러에 이르는 어느 때라도 테슬라는 돈을 벌 수 있다. 올해 들어 71일 중 31일의 일일 평균 전기요금은 1MWh 당 136달러였다.

사실 ESS의 장기적인 문제는 장비의 가격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이윤 구조의 중심인 변동성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은 남호주 전력시장의 널뛰기 장세가 테슬라에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ESS 설치가 완료되면 낮은 전기요금 때문에 100MWh의 수요가 추가적으로 발생할 것이고, 추가 수요는 현재 수준의 높은 가격으로 사들인 상태에서 제공돼야 한다.

이는 주의 전력 소비자들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호주 경제에는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피클링 칼럼니스트는 "머스크가 100일 안에 전력난을 해결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이는 문제의 절반에 불과하다. 전력거래에도 공짜 점심은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테슬라의 호주 ESS 시장 확대에 대해 국내 대표적인 ESS 업체들은 말을 아꼈다. 삼성SDI-LG화학 역시 가정용 ESS를 생산, 시판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테슬라는 후발주자다. 테슬라가 2015년 파워월이란 가정용 ESS를 판매하기 시작한 데 비해 삼성SDI는 2011년 일본 니치콘에 가정용 ESS를 공급한 바 있으며 2015년 독자적인 가정용 ESS 브랜드 ‘올인원’을 제작했다.

LG화학도 2015년 가정용 ESS인 ’RESU‘ 시리즈를 선보였다. RESU는 레지던탈 에너지 스토리지 유니트(Residential Energy Storage Unit)의 약자다. 후발 주자인 테슬라의 파워월이 앨런 머스크의 지명도를 등에 업고 세계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두고 가정용 ESS의 원조 격인 국내 기업들은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삼성SDI 관계자는 "동종 업계의 사업 확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LG화학 관계자는 보다 직접적으로 "경쟁사 업적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는 곤란하다"며 "전지를 생산하지 않는 PCS나 ESS 팩키지 기업에 묻는 것이 더 낫다"고 날을 세웠다.

삼성SDI와 LG화학은 가정용 ESS를 주로 북미, 일본, 유럽, 호주 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특히 삼성SDI는 14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고 있는 ‘에너지스토리지유럽 2017’ 전시회에 가정용 ESS 2종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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