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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기고] 지금은 균형 잡힌 재벌 정책이 필요하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3.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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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



항상 그러하듯 대선 때가 다가오니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공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재벌을 개혁해야 공정한 시장경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모든 후보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결국 재벌이라는 기업집단구조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지배주주가 자신이 보유한 지분보다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하며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보유한 지분에 해당하는 만큼만 권한을 행사해야 공정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의 생각이고 많은 국민들의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균형 잡힌 정책이 가능하다.

조그맣게 자기 돈으로 사업을 시작하다 장사가 잘 돼 많은 사람들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 모아 사업을 확장하려면 주식을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기업가의 지배권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자신의 경영권과 경영철학이 보장되지 않는데도 투자를 확대하며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자신의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자금을 끌어 모으려고 할 것이고 어찌 보면 이것은 기업가의 당연한 속성이다. 만일 이렇게 할 수 없다면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꺼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을 계속 키워나가면서도 경영권을 계속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유한 주식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면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1주1의결권 원칙에서 벗어나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것이다. 기업가는 1주에 10개 또는 100개의 의결권이 있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보유하고 일반 주주들은 1주에 1개의 의결권이 있는 일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다.

둘째, 1주1의결권 원칙은 유지하고 대신 기업집단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기업집단 내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에게 출자하여 지배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방법들은 우리나라 법에서 규제되고 있다. 상법에서는 차등의결권 주식발행을 금지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대규모 기업집단에서의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외에 계열사 간 상호출자와 순환출자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차등의결권도 미국, 일본 등은 물론 유럽 다수의 국가들이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특히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하는 국가들이 최근 늘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의 대표기업인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차등의결권 주식발행이 허용되는 네덜란드로 본사를 이전 하자 2014년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했다.

프랑스도 2014년에 차등의결권 주식을 도입하였고 2016년에는 룩셈부르크가 도입하였다. 2017년에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보유한 주식보다 더 많은 지배권을 부여해 지배주주의 권한남용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고 있는 차등의결권 주식을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자국 기업이 성장동력을 확보해 장기적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안정된 경영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함이다.

단기적 이익에 주로 관심이 있는 해외 투기자본이나 기관 투자자들에게 끌려 다닐 경우 장기적 기업가치 상승을 위한 경영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장기적 투자와 경영판단이 절실하다.

장기적 관점에서의 경영판단을 가능케 하는 기업집단 구조의 긍정적 측면도 충분히 고려한 재벌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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