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부침주(破釜沈舟) 마음으로 경영하라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이때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은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적은 것이 좋을까요?" 많은 사람은 ‘선택권은 언제나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그럴 경우 가장 유리한 방법을 사용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볼 때는 선택권이 적을 수록 좋은 경우가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토머스 셸링은 말한다. "아테네 장군 크세노폰을 보라. 그는 여러 가지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선택을 없앴다. 모든 병력을 이끌고 계곡을 등지고 싸웠다. 병사들에게 ‘후퇴’라는 선택권을 빼앗은 것이다. 병사들은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리고 그들은 승리했다."
크세노폰이 선택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배수진(背水陣)이다. 병사들이 자신이 가진 최상의 능력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한다. 破釜沈舟(파부침주), 즉 타고 온 배를 물에 빠뜨리는 배수진의 전략이다. 나는 자신이 나태해 진다고 생각할 때 토스토예프스키와 허쉬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토스토예프스키는 겨우 24살에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대박을 쳤다.
그러나 너무 빠른 성공은 그에게 공허감을 주었다. 그는 급진주의 농민운동에 빠진다. 그러다가 체포됐고,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교수대 위에서 그는 "내가 만약 살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한다. 극적으로 교수형 직전에 러시아 황제의 사면통보를 받고 살아난다. 시베리아에서 4년간 유형생활 중 그는 최악의 순간을 견뎌냈다.
수많은 죄인이 죽어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그는 그때부터 미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매일 매일이 마지막이라는 듯 말이다. 죽음 앞에 갖다 온 것이 토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인생의 배수진이다. 세계적인 명작인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래서 탄생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857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소년이 있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4년이 전부다.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잡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신문사 견습공과 제과점 허드렛일을 하면서 간신히 허기만 채우는 생활을 하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19살의 나이에 제과도소매업 회사를 설립하지만 파산하고 만다.
그 다음에 시작한 사탕사업도 실패했다. 세상은 혹독했다. 그럼에도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결국 그는 캐러멜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조그만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초콜릿사업으로 대박을 친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다"는 모토로 안일과 태만을 경계했다. 어느 순간에 세계 최고의 초콜릿 생산 회사의 주인이 됐다. 바로 허쉬 초코릿을 만든 밀턴 허쉬다.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최상의 능력을 이끌어 낸 그에게 성공은 당연한 일이다. 끝없는 도전,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마인드로 초콜릿 대량생산에 성공했고, 여름에도 잘 견디는 초콜릿을 만들었다. 허쉬초콜릿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월남전쟁에 구호품으로 짱이었다.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나라의 구호품에도 허쉬초코릿은 있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미제 허쉬 초코릿을 배급받아 먹은 기억이 있다.
CEO에게 가장 큰 적은 CEO 자신이다. 만일 회사 경영이 문제가 있다면 CEO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현재의 경영에 전념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만일 열중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긴박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도 대충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삶을 토스토예프스키나 허쉬처럼 절박감을 가지고 일하라. 그것이 자신과 가족과 직원에 대한 CEO의 책임인 것이다.
▲반기문 조선대 대학원 겸임교수 |
크세노폰이 선택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배수진(背水陣)이다. 병사들이 자신이 가진 최상의 능력을 다해 싸울 수 있도록 한다. 破釜沈舟(파부침주), 즉 타고 온 배를 물에 빠뜨리는 배수진의 전략이다. 나는 자신이 나태해 진다고 생각할 때 토스토예프스키와 허쉬를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토스토예프스키는 겨우 24살에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로 대박을 쳤다.
그러나 너무 빠른 성공은 그에게 공허감을 주었다. 그는 급진주의 농민운동에 빠진다. 그러다가 체포됐고,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교수대 위에서 그는 "내가 만약 살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고 생각한다. 극적으로 교수형 직전에 러시아 황제의 사면통보를 받고 살아난다. 시베리아에서 4년간 유형생활 중 그는 최악의 순간을 견뎌냈다.
수많은 죄인이 죽어갔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그는 그때부터 미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마치 매일 매일이 마지막이라는 듯 말이다. 죽음 앞에 갖다 온 것이 토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인생의 배수진이다. 세계적인 명작인 ‘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그래서 탄생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857년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소년이 있다. 학력이라고는 초등학교 4년이 전부다. 어릴 때부터 공부보다는 잡일을 해 돈을 벌어야 했다. 신문사 견습공과 제과점 허드렛일을 하면서 간신히 허기만 채우는 생활을 하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19살의 나이에 제과도소매업 회사를 설립하지만 파산하고 만다.
그 다음에 시작한 사탕사업도 실패했다. 세상은 혹독했다. 그럼에도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결국 그는 캐러멜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조그만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초콜릿사업으로 대박을 친다. 그는 "나의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다"는 모토로 안일과 태만을 경계했다. 어느 순간에 세계 최고의 초콜릿 생산 회사의 주인이 됐다. 바로 허쉬 초코릿을 만든 밀턴 허쉬다.
인생의 배수진을 치고 최상의 능력을 이끌어 낸 그에게 성공은 당연한 일이다. 끝없는 도전,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마인드로 초콜릿 대량생산에 성공했고, 여름에도 잘 견디는 초콜릿을 만들었다. 허쉬초콜릿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월남전쟁에 구호품으로 짱이었다.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나라의 구호품에도 허쉬초코릿은 있었다. 필자도 초등학교 시절 미제 허쉬 초코릿을 배급받아 먹은 기억이 있다.
CEO에게 가장 큰 적은 CEO 자신이다. 만일 회사 경영이 문제가 있다면 CEO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항상 현재의 경영에 전념하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만일 열중하지 않는다면 현실을 긴박하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도 대충하는 것이다. 항상 자신의 삶을 토스토예프스키나 허쉬처럼 절박감을 가지고 일하라. 그것이 자신과 가족과 직원에 대한 CEO의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