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길 잃은 에너지 정책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
에너지정책은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다. 우선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기술적으로 가능해야 한다. 또한 목표를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달성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만일 이를 통해서 에너지와 관련된 산업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국부를 창출하는 성장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최근 에너지정책에서는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의 퇴출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확대 보급이 화두다. 이 논의의 하부에는 태양과 바람이 없어서 재생에너지원으로 전력생산이 되지 않는 경우에 LNG 발전 등으로 전력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것도 논의된다. 이와 다른 차원으로는 정부가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여 ‘에너지신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포함한다.
이런 논의는 안정적 공급이라는 목표보다는 수단에 치우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어떤 수단을 택하더라도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한다는 기본적 목표를 공히 만족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면 지금과 같은 논의방식은 에너지정책을 수립하는 기본 목표를 잃은 것이 될 수 있다.
에너지정책이 에너지원간 타협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래서 석탄, 원자력, LNG, 수력 등의 비중이 회의석상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은 에너지 혼합(Energy Mix)을 결정할 때는 경제성, 환경성, 기술성, 안정성 등을 서로 비교할 수 있는 지표로 만들어서 고려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격이라는 지표로 환산하게 된다.
이를 두고 경제성 위주의 고려를 했다고 하는데 옳지 않다. 예컨대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려면 이산화탄소 배출원에 탄소세를 포함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 탄소세를 얼마로 할 것인가가 바로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다만 에너지안보는 경제성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정책적인 평가를 할 때 반영된다.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비싼 가격도 문제지만 전력을 공급하는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 전력이 생산되지 않고 자연여건이 허락할 때만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전원은 공급력(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원의 양)으로 고려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 이미지로 인하여 사회적 요구가 있고 이들을 확대함으로써 해당 분야의 산업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지 또한 이것이 얼마나 미래 먹거리 창출을 할 수 있는지를 보고 ‘그냥 몇 퍼센트 넣자’는 식으로 정책이 결정된다. 그래서 이들을 ‘정책 전원’이라고 부른다.
전력정책은 발전원별로 경제성, 환경성 등을 가격으로 환산하고 이들을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순서로 채택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송배전 능력도 고려하고 주파수 조정을 위한 발전원으로써 일부 석탄발전원을 넣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전력정책이 공급의 안정성을 배제하고 수단적 논의를 주로 하는 것은 위태롭다. 재생에너지는 좋은 것 그리고 원자력발전과 석탄발전은 나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각인해 놓고 시작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러한 전력정책은 한두 가지로 요소로 결정을 해버리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더구나 전력은 생산과 공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에너지로서 생산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어 쓰는 에너지와 달리 생산과 공급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에너지다. 그렇기 때문에 전력수급계획을 세워 미래의 수요에 대처하여 설비를 갖추는 것이다.
때문에 재생에너지 전력생산의 간헐성이 지능형 전력망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면 그 기술이 실증되어 시장에 들어올 수 있을 때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현재 가지고 있는 무기만 가지고 나가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너지 절약을 많이 할 것이다’는 기대감과 각오를 가지고 전력수급을 수립해도 문제가 생긴다.
최근 전력정책에 대한 논의는 발전원의 채택이라는 수단적 요소에 집착하고 있고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과 기대에 기반하여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또한, 특정 산업의 육성정책이 지나치게 삽입됨에 따라서 안정적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목표를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