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건설된 사핀 패스 LNG 수출터미널. (사진=셰니에르 에너지) |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파리 기후변화협정 이후 재생에너지로 가는 ‘징검다리 연료’로 주목받고 있는데다, 미국이 트럼프 정부 들어 LNG 수출시장 확보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한국가스공사가 아시아 최초로 미국산 LNG를 도입하기로 밝힌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공약인 일자리 창출과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LNG 수출에 집중할 방침이다.
트럼프 대통령 에너지 정책의 골자는 무역 정책의 수단으로 천연가스 수출을 활용해 에너지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고, 아시아 지역의 LNG 판매를 지원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고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있다.
미국의 에너지 자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로의 LNG 수출을 늘리고 유럽의 LNG 수출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해관계도 들어맞는다. 한국과 일본, 인도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카타르, 호주 등을 중심으로 짜여있는 LNG 공급선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 LNG 기업들 간 계약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겠다며 팔을 걷고 나섰다.
LNG 회사 텔리루안의 대표이자 셰니에르 에너지의 전임 CEO 차리프 수키는 "오바마 정부가 LNG 수출에 부정적이었다는 인식은 틀린 것이지만, 새 정부 이후 LNG 사업에 대한 지원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전역의 일자리 창출을 핵심 어젠다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셰일을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수키 대표는 덧붙였다.
저명한 에너지 애널리스트 다니엘 예르긴 IHS 부회장 역시 "오바마 정부는 LNG 개발과 수출을 광범위하게 지원해왔으나, 이를 미국 무역전략의 핵심적 요소로 보지는 않았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중국과의 무역적자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LNG 수출 확대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폴란드에 동유럽 최초로 미국산 LNG를 수출했다는 점도 이슈지만, 가장 명백한 변화는 중국과의 협상이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LNG 기업과 중국 정부간 계약 체결로, 중국에 대한 LNG 수출이 가속화되고, 3000억 달러 규모의 대중 무역적자를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윌버 로스 미 상무부 장관과 릭 페리 에너지 장관은 최근 중국과의 회담에서 "미국 걸프만 연안에 건설된 사빈패스 LNG 수출터미널에서 선적되는 미국산 LNG의 구매자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셰니에르의 한 경영진은 "오바마 정부 당시 대중국 LNG 판매에 특별한 제한은 없었지만,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정치적 분쟁은 중국의 구매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중국 구매자들을 달래기 위해 5월 미 상무부는 "미국은 LNG 구매자로서의 ‘중국을 환영한다’"며 "무역 조건 면에서 시장경제지위를 획득한 다른 국가와 동등한 정도로 대우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중국인들은 미국 대통령과 정부가 에너지 수출을 지원한다는 확신을 듣고 싶었던 것"이라며 "셰일 혁명이 가져온 풍부한 에너지 자원은 미국 내 수요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안정적인 공급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중국 외에도 일본이나 한국, 인도 등지에서도 구매자를 찾는 모습이다. 다음달로 예정된 가스공사의 미국산 LNG 수입도 이와 맞물린 행보라는 평가다.
▲지난해 글로벌 LNG 교역량. (단위=10억 큐빅피트, 표=FT) |
오바마 정부는 환경 문제라는 걸림돌 때문에 셰일가스 생산에 종종 상반된 입장을 내비쳤었다. 에너지 기업들은 LNG 설비와 수출 승인에 오랜 시간 기다려야 되는 상황에 불만을 제기해왔다.
전임 정부의 한 관계자는 "오바마 정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해왔다. 셰일업계가 창출하는 일자리를 끌어안으면서도, 프래킹이 야기하는 환경문제와 LNG 수출이 미국 내 LNG 가격을 폭등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환경에 대한 우려도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오바마 정부는 셰일가스의 환경파괴 논란에 부딪치면서 LNG를 정책적으로 장려하는 데 망설여왔다. 프래킹(수압파쇄법)은 200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일어난 셰일혁명을 이끌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셰일가스를 채취할 때 우라늄 등 화학물질이 지하수에 스며들 수 있고, 일반 천연가스보다 오염물질인 메탄이나 이산화탄소가 많이 발생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신임 대통령은 망설임이 없다"며 "정부는 앞으로도 공격적으로 LNG 증산·수출 지원정책을 펼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셰니에르가 110억 달러를 들여 루이지애나 주에 건설한 사빈 패스 LNG 수출 터미널 외에도 5개의 설비들이 걸프만 연안에 건설 중이다. 4개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상태이나, 시공에 들어가지는 않은 상태다.
업계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LNG 계약은 민간 기업 간 체결되는 만큼, 특정 정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서도 "미 당국이 수출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 과정을 완화하거나 미국 기업에 대한 수사적 지원을 늘림으로써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페리 장관은 이달 베이징에서 개최된 에너지 장관 회의에 참석해 "에너지부처는 LNG 수출이 공익사업인지 여부를 결정한다"며 "나의 역할은 LNG 설비들의 가동과 사업이 최대한 빠르게 시작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 2위 LNG 수입국인 한국도 미국의 정책적 변화에 발맞춰 물량 확보에 잰걸음을 걷고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내달 2일 아시아 최초로 미국산 셰일가스 15만톤을 국내에 들여오기로 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지난 25일(현지시각) 사빈패스 터미널에서 셰니에르 에너지와 공동으로 미국산 LNG 인수식을 열었다. 가스공사는 2012년에 사빈 패스와 장기 LNG 매매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최초로 미국산 LNG 물량을 확보한 바 있다. 가스공사는 이 터미널로부터 2036년까지 연간 280만톤의 LNG를 국내로 도입할 예정이다.
가스공사 측은 "미국산 LNG 수입액은 연간 10억달러에 이른다"며 "기존의 중동 중심 LNG 공급선을 다변화해 국내 천연가스 공급 안정을 강화하고 한-미간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와 양국 협력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번 미국산 LNG는 구매자가 계약물량 전체를 자율 처분할 수 있어 국내 수급에 잉여가 발생할 경우 제 3국에 내다 팔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