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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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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외치더니 화석연료 투자…'G20의 민낯'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7.08 21:24

- ‘한 입으로 두 말’ G20, 화석연료 투자, 재생에너지 4배
- "한국 재생에너지 투자 화석연료의 약100배"

▲(사진=AP/연합)



"파리 협정은 되돌릴 수 없고, 다시 협상할 수도 없다. 이 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스는 언제나 인권을 위한 투쟁을 주도해 왔다. 이제 지금까지 이상으로 기후변동에 대한 투쟁을 주도할 생각이다. 그리고 승리할 것!"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선진국 정상들의 발언이다.


◇ 기후변화 외치는 G20, 뒤로는 화석연료에 수조원 투자



이제 전세계의 눈은 독일 함부르크에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다자 외교전 데뷔 무대로 관심이 집중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7일∼8일(현지시간) 개최되고 있기 때문이다. G20 정상회의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파리 기후변화 협정이다.

그러나 주요 20개국은 기후변화 대응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면에 재생에너지 대비 화석연료 투자를 4배 이상 단행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6일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 지구의벗, 시에라클럽, 세계자연기금 등 국제환경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G20 국가의 화석연료 공적금융 지원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G20국가들은 2013년과 2015년 사이 연 평균 718억 달러(한화 82조 7638억 원)를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공적자금 형태로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금 187억 달러(21조 5554억 9000만 원) 대비 4배에 달하는 수치다.

공적금융 지원은 대개 소프트론(원조성격으로 제공되는 차관으로 상환기간이 길거나 금리가 낮아 비교적 상환부담이 적음)과 정부 보증 형태로 이뤄진다. 보고서는 공적금융 지원이 대규모 보조금과 함께 석유 가스의 발전단가를 낮추고 탄소 배출량을 10년 이상 답보 상태에 머물게 한다고 비판했다.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액수가 가장 많았던 일본은 연 평균 165억 달러를 투자해 재생에너지와의 격차가 6배에 달했다.

세계 1위의 석탄 생산소비국이었으나 석탄 사용량을 줄이고 기후변화의 차세대 리더로 주목받는 중국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135억 달러를 화석연료에 투자한 반면,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금은 85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기후변화 리더를 자처하는 독일 역시 화석연료에 대한 공적금융 지원액수는 35억 달러였고, 재생에너지 부문 투자는 24억 달러에 머물렀다. 영국은 화석연료에 9억72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재생에너지에는 1억7200만 달러를 투자해 격차가 5배에 달했다.


◇ 한국, 화석연료 투자액 재생에너지의 100배 달해…



한국의 경우 격차가 더욱 두드러졌다. 재생에너지 대비 화석연료 투자액이 100배에 달하는데다, 화석연료 공적금융 지원 규모가 G20 국가 중 3위로 집계됐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3∼2015년 연평균 89억 달러(10조 2563억 원)의 공적금융을 화석연료 사업에 지원했다. 이는 일본과 중국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금액으로, 청정에너지 분야 지원액 9200만달러(1064억 2560만 원)의 약 97배에 달한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연간 70억 달러를 석유·가스 사업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기관은 석탄 사업에는 8억 6400만 달러(9956억 7360만 원)를 지원했다. 2013∼2015년 화석연료에 공적금융을 지원한 세계 상위 10대 수출신용기관에 한국수출입은행은 2위, 무역보험공사는 7위에 올랐다.

환경운동연합의 이지언 에너지기후팀장은 "한국의 화석연료 공적금융 지원 규모는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다"면서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화 산업에 공적 재원을 쏟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기후 변화에 관한 파리 협정에서 전 세계가 공동 합의한 기후변화 대응 목표를 달성하려면 화석연료 채굴과 탐사를 중단하고 청정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의 공동저자인 지구의 벗의 케이트 드엔젤리스는 더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드엔젤리스는 "G20 정상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로 떠드는 것은 쉽다"고 지적했다. 그녀는 "부자나라들은 자국 재생에너지 투자에 관해 서로 덕담과 칭찬을 주고 받으면서 한편으론 개발도상국의 더러운 화석연료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씩 돈을 쏟아 붓고 있다"고 비난했다.


◇ IMF "G20, 1초에 2억씩 화석연료에 투자"

▲(사진=이미지투데이)


G20 국가들의 투자 현황은 앞선 메르켈 독일 총리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기후변화를 주요 의제로 삼을 것을 분명히 했다.

그녀는 연방하원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협정 탈퇴를 공식화했지만 이 협정은 되돌릴 수 없고, 다시 협상할 수도 없다. 파리협정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실존적 도전에 맞서 싸워야 하는 상태"라며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를 믿을 때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G20 국가들의 모순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도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G20과 G7 국가들은 화석연료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는커녕 1분에 1000만 달러(한화 115억 1500만 원), 1초에 16만8000달러(약 1억 9345만 원)씩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화석연료 회사들이 매년 5조3000억 달러(6102조 9500억 원)에 달하는 지원금을 제공받고 있는 셈"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5조 3000억 달러는 2015년 기준 전세계 정부의 총 의료지출을 넘어서는 액수다.

앞서 2009년 G20 정상들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0% 감축할 것"이라며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G20 국가들은 2조8000억 달러를 운용하는 전세계 투자자들의 강력한 촉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까지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기한을 설정하지 못했다. G7은 2025년까지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하겠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그러나 친화석연료를 표방하는 트럼프 정부가 G7의 기후변화 대응책에서 빠지겠다고 밝히면서 기후변화 모멘텀은 상당히 약화된 상태다.

러시아,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더욱 충격적이다. 보고서 조사 결과, 양국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적 지원금이 전무했던 반면 화석연료에 10억 달러(1조 1568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의 니콜라스 스턴 교수는 "IMF의 연구결과는 화석연료의 실제 비용이 얼마나 비싼 지 보여줌으로써 화석연료가 값싸다는 신화를 깨뜨린다"고 밝혔다. 스턴 교수는 "화석연료에 대한 막대한 지원금은 시장을 왜곡시키고 세계 경제에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 "빈곤국이 입는 피해는 더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금융 기관 중 하나인 IMF는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을 폐지할 경우 전세계 탄소배출량을 20%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각 정부의 화석연료 지원 삭감이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거대한 발자국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한편, 보고서가 분석한 화석연료 금융 지원에는 국제 개발 은행의 지원금도 포함된다. G20 정부가 국제개발은행의 상당수 지분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 측은 설명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원금에는 원자력이나 대형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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