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29일(토)
에너지경제 포토

한상희 기자

hsh@ekn.kr

한상희 기자기자 기사모음




추락하던 국제유가 50달러 턱걸이..."재고 줄고 수요 늘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8.02 07:35

"美 셰일업체 원유 증산 속도 늦춘다"

▲(사진=이미지 투데이)



흐릿하기만 하던 원유시장의 앞날에 다시 볕이 뜨고 있다. 광폭 행보를 거듭하던 미국 셰일업계가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치킨 게임 이후 3년 만에 처음으로 지갑을 닫기 시작하면서다. 

지난 5월 중순 이후 하락세를 타던 국제유가가 지난 31일(이하 현지시간) 두 달만에 50달러 선을 회복했다. 다음날인 1일 이익실현 매물에 1달러 가량 빠지긴 했으나, 상승 추세 방향성은 유효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31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9월 인도분은 전거래일보다 배럴당 0.46달러(0.93%) 상승한 50.1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가 50달러 선을 회복한 것은 지난 5월 24일 이후로 두 달여 만이다. 월간 기준으로는 9% 가량 오르면서 2016년 4월 이후 가장 높은 월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날 런던 ICE 선물시장의 브렌트유 9월물은 배럴당 0.13달러(0.3%) 오른 52.65달러에 장을 마쳤다. 월간으로는 9.9% 오르며 역시 지난해 12월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 "재고 줄고 수요 늘고" 견고한 펀더멘탈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시장의 센티멘트가 조심스럽게 낙관론으로 기울고 있다"면서 "시장 재균형을 향한 노력이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펀더멘탈 역시 견고하다. 기록적인 수준으로 치솟았던 원유재고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 21일 발표된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집계 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주간 원유재고가 720만 배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재고가 5년 평균 수준으로 낮아진 것이다. 

투자자들은 점차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미만으로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를 떨쳐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주 투자노트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행로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지만, 최근의 원유 데이터의 펀더멘털이 시장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러한 추세가 지속된다면, 내년 초 재고 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재고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낙관론에 힘을 더한다. 골드만에 따르면, 유럽, 싱가포르, 일본,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총 8300만 배럴의 재고가 소진됐다. 

수요 측면에서도 방향성은 유가 상승을 가리키고 있다. 최근 세계에너지기구(IEA)는 세계 원유 수요가 올해 1.5% 증가한 하루 9800만배럴을 기록할 것이라며 기존 예상치에서 10만 배럴 상향조정했다. IEA는 내년에도 비슷한 속도로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 역시 오는 3분기 원유 재고 감소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재고가 이미 5년 평균 범위의 상단 수준까지 떨어진 가운데, 추가하락은 원유시장의 수급을 보다 타이트하게 만들 것이는 설명이다. 


◇ 청신호 ‘백워데이션 확대’…"재고축적 유인 급감"

또 골드만은 재고 감소가 계속되면 원유 선물시장이 백워데이션(현물이나 선물 근월물가격이 원월물가격보다 높은 경우) 상태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간 골드만은 ‘수급 재균형’을 위해서는 백워데이션이 필수적이라며, OPEC이 이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강조했다. 원유재고 축적 유인이 사라지면서 재고가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셰일 시추업체들 입장에서도, 현재의 원유가격보다 미래의 유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증산 속도가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셰일업체에 자금을 대는 월가 은행들 역시 대출 규모를 제한할 것으로 골드만은 예상했다. 

향후 1∼2년 안에 유가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될 경우, 은행은 셰일기업의 신용공여 한도 즉, 크레이트라인을 낮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간 셰일업계는 광란의 질주를 거듭하면서 전속력으로 생산량을 늘려왔다. 이는 OPEC이 애써 올려놓은 유가를 몇 차례나 끌어내렸다. 


◇ 유가랠리에도 ‘신중’…"지출 삭감 + 수익성 개선" 요구

이와 관련, 닉 커닝엄 오일프라이스 연구원은 "이번에는 아마 다른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셰일에 돈을 쏟아붓던 투자자들이 보다 신중해지면서, 기업에 지출 삭감과 수익성 개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주 안다르코 페트롤리움부터 휘팅 페트롤리움, 코노코필립스, 헤스까지 미국 내 주요 셰일기업들은 대대적인 지출 삭감 계획을 발표했다. 이같은 추세는 앞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실적 발표 자리에서 안다르코의 알 워커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경영환경에서 마진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자본 투자를 줄여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출 삭감 계획은 많은 셰일기업들이 오늘날 유가의 경제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셰일산업의 경영진들은 지난 몇 년 간 이어진 업계의 광폭 행보를 중단하고 수익성을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투자은행 스티펠의 애널리스트들은 "배럴당 40∼45달러의 유가 환경에서는 미국 육상 유전의 성장세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견해에 많은 투자자들이 동의하고 있다"면서 "현금흐름을 개선하기 위해 셰일업계는 지출을 삭감하고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드맥킨지의 애널리스트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맥킨지의 벤자민 셰턱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수익성과 마진보다 생산량 증가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셰일오일의 투자자들과 생산자들이 황금알을 낳기 전에 거위를 죽이고 있다"고 비유했다. 결국 원유채굴장비를 줄이고, 자본지출은 지금보다 더 많이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투자은행의 조언을 받아들인 것일까. 스스로 위험성을 인식한 것일까. 셰일업계는 잇달아
투자비를 삭감하고 나섰고 셰일의 증산 행보에도 제동이 걸렸다. 이를 반영해 EIA는 내년도 미국의 일일 원유생산량을 1000만 배럴에서 990만 배럴로 하향조정했다. 

커닝엄 연구원은 "지난 6월 펼쳐진 유가 하락세가 석유업계 경영진들에게 ‘갑작스런 랠리는 믿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 美 최대 셰일 지대 ‘퍼미안’ 증산 계획 유지될까

다만 미 최대 셰일 지대인 퍼미안 분지의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골드만은 퍼미안이 비용절감과 생산성 개선 두 가지 이유로 미국 내 다른 셰일 지대와 구분된다고 밝혔다. 

우선, 신규 모래 광산들이 퍼미안 분지 인근에서 가동을 시작하면서 채굴 비용을 5% 이상 낮출 수 있다. 시추유정에 필수적으로 투입해야 하는 모래의 운송비용이 대폭 절감되기 때문이다. 이는 손익분기유가를 배럴당 1.5∼1.7달러 가량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퍼미안 내 유전의 생산성 역시 약 3∼10% 증가하면서 몇 년 사이 최대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퍼미안 내 시추업체들은 증산 계획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닉 커닝엄 오일프라이스 연구원은 "이는 퍼미안에 한정된 예일 뿐"이라면서 "미국 전역을 놓고 봤을 때 셰일오일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잘못된 유가 전망에 근거한 사업계획에 몇 차례 타격을 입은 셰일업계는 마침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