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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경人파워인터뷰] 마해영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코치(전 야구선수)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

복현명 기자hmbok@ekn.kr 2017.09.12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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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코치가 야구학교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복현명 기자)

2002년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 KBO통산 1609개의 안타, 260개의 홈런. 한국시리즈 MVP 수상에 골든글러브 수상까지. 화려한 이력으로 자신의 삶을 아로새긴 이가 있다. 바로 마해영 현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코치(전 야구선수)다.

삼성라이온즈 소속이던 2002년 골든 글러브 시상식 지명타자 부문에서 획득한 득표율 99.26%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깨지지 않고 있는 불멸의 기록이다.

우타자로는 처음으로 3년 연속(2001년∼2003년) 30홈런의 기록과 2002년 이승엽, 양준혁 선수와 함께 클린업 트리오로 불려 삼성 라이온즈의 강력한 타선을 구성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불꽃남자’로 불렸던 그는 지난 2008년 롯데자이언츠에서 은퇴 이후에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책도 집필하고 각종 스포츠 방송에서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지난해 11월 개교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에서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도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마 코치를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소재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에서 만났다. (대담=송정훈 금융부장, 정리=복현명 기자)


▲ 일반적으로 유명했던 야구선수는 프로에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로에 코치로 가지 않고 야구학교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스포츠투아이라는 회사는 KBO공식기록을 전부 관리를 하고 있고 야구 중계를 할 때 야구 감독이나 선수들의 자료를 전부 가지고 데이터를 방송사에 제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구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장기적인 계획은 야구 체육 전문 고등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내가 스카우트가 됐다. 이상일 사장을 돌아가신 하일성 해설위원의 상갓집에서 만나서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을 나에게 던지신 이후로 내가 코치로 들어오게 됐다.

프로팀에 들어가고 싶지만 이외로 경쟁률이 심하다. 예전에 선수협의회를 했다는 ‘주홍글씨’가 있고 구단에 있다가 은퇴하자마자 바로 해설로 넘어왔기 때문에 야구 구단쪽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프로팀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는데 잘 안됐고 이쪽에서 연락이 와서 야구해설도 편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오게 됐다.

야구학교는 청소년부터 해서 사회인야구단, 프로 데뷔반까지 전부 골고루 만날 수 있어 좋은 경험이 되고 있다.


▲ 적성에는 맞는가. 프로에서 유명한 선수가 지도자가 돼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던데.

일반적으로 스타 선수들의 좋은 지도자가 안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자기는 잘했는데 선수들이 잘 안되니까 답답하다고 보일수도 있는데 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이론적으로 공부해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래서 이론과 실기가 병행이 되고 있고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준비를 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썰전’ 같은 그런 방송 프로그램이 야구와 관련돼 생겨난다면 불러만 준다면 출연해 소위 ‘맞짱’뜰 자신이 있다(웃음).


▲ 선수시절을 이야기해보자. 대학 졸업후 지명을 받고 군대를 갔다가 롯데자이언츠, 삼성라이온즈, 기아타이거즈, LG트윈스를 거쳐 다시 롯데자이언츠에 복귀했었다. 그 당시 올스타전 선수와 2002년 한국시리즈 MVP와 정규리그 안타 1위, 골든글러브 지명타자상도 받았었는데 야구선수 시절 제일 기억나는 장면은.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야구는 좀 해봤다"고 자부하는데 그런 선수중에 가장 방출을 많이 당한 선수가 바로 나인 것 같다. 선수협의회 활동 시절과 고액 연봉일 때 등등 스토리가 너무 많다.

그게 내 인생이고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특히 1995년도 내가 신인일 때 4번 타자로 나서 전 경기를 소화한 적도 있고 김용희 전 SK와이번스 감독 덕분에 빨리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잡게 됐다.

그 당시 롯데팀내에 전준호, 이종훈 선수 등 좌타자들이 많았다. 우타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내가 빨리 자리잡아 열심히 롯데팀에서 성장을 했다. 전성기를 거치고 선수협의회 활동 등으로 인해 삼성라이온즈로 트레이드가 됐고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시기를 거쳤다.

이에 롯데팬들은 나에게 "롯데선수"라고 하고 삼성팬들도 "삼성선수"라고 인정해줘 너무 감사하다. 그 이후 자유계약(FA) 신분으로 기아타이거즈로 옮겨갔고 그 당시 최대금액인 28억원(옵션 2억원) 포함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 경기를 많이 뛰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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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 현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코치. (사진=복현명 기자)


▲ 기아타이거즈에 거액을 받고 입단하고 난 뒤 경기를 많이 나오지 못한 배경은.

그 시기가 자유계약신분(FA)이어서 기아타이거즈에서 뛸 동안 감독이 3명이나 바뀌었다. 감독이 바뀌면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팀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의도로 스타선수를 한명 혼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당시 바로 2군으로 내려보냈다.

항상 잘할 수는 없었지만 꾸준히 기회를 얻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1995년에 입단해 FA가 된 9년 동안 단 2경기만 빠졌다. 첫 번째는 선수협의회 활동으로 계약이 해지되서 못나간 것이고 다른 한 경기는 더블헤더 경기때 김응룡 감독이 "타격감이 좋지 못하다"고 1경기를 뺐다.

기아에 입단한 FA 4년동안은 1/3밖에 경기를 뛰지 못했다. 기아에서 2년 뛰다가 LG트윈스로 왔는데 또 LG에서의 2년동안 감독이 3명이나 변경됐다. 

그 당시 이순철 감독이 불러 기아에서 LG로 이동해 4번 타자로 경기를 뛰고 있는데 이 감독이 경질되면서 나도 함께 2군으로 내려가게 됐다. 그 다음에 김재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고 정확하게 11경기를 뛰고 2군으로 다시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1군으로 올라오지 못해 방출됐다.

그래서 2008년에 다시 롯데자이언츠로 간 것이다. 롯데로 가서도 2군으로 내려가 못 올라왔다. 그 당시 로이스터 감독에게 "고향팀에 와 코치를 하고 싶어서 롯데로 다시 온게 아니고 경기를 뛸 기회가 없어 시합을 못나가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며 "4~5월 두달동안 못하면 내 스스로 옷을 벗겠다"고 한 적도 있다. 그만큼 야구도 못하면서 예전의 명성으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후보였다.

그러나 2군에 뛰고 있으면서도 팬들의 사랑으로 2008년 프로야구 올스타전 팬 투표 선발 선수로 지명타자로 출전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나의 은퇴경기가 됐다.


▲ 운동선수였음에도 교육학(고려대 체육교육학과)을 전공했고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이유는.

아버지의 경우 공부를 잘하셨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하셨고 아버지가 가장 가고 싶어한 대학이 고려대여서 고려대를 간 것이다. 나의 형도 고려대 출신이다. 형은 공부로 고려대를 갔고 나는 운동을 잘해서 고려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담임선생님이 "과를 어디로 가고싶냐"고 물으셔서 "체육교육학과"를 가고 싶다고 했었다. 나름대로 성공하면 좋겠지만 부상을 당하거나 안좋을수도 있으니 체육교사가 하고 싶어 체육교육학과를 간 것이다.

교사 자격증을 받았지만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졌다. 내가 야구를 은퇴한 나이가 39살이었다. 체육교사를 다시 도전을 하는 것보다 공부를 더 해서 대학교수를 해보자는 생각에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공부를 왜 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 미래를 위해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 영어실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선수 시절 외국인 선수, 감독하고 의사소통도 쉽게 했다고 들었는데 영어를 따로 공부한 것인가.

나의 형이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와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래서 형에게 "내가 독해를 해야할 필요는 없는데 만약 코치연수를 가게 된다면 말을 할줄 알아야 할 것 같으니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니 "학원을 다녀라"라고 말해줬다. 그래서 오전에 학교 수업을 듣고 오후엔 운동을 하고 저녁때 회화학원을 다녔다.

내가 그당시 대학생 선수여서 가방을 큰 가방을 들고 다녔는데 학원 강사가 내 정체를 되게 궁금해했다. 나이는 학생 같은데 영어는 못하고 가방은 큰 걸 들고 다니니까 ‘장사하는 사람’으로 착각을 했다고 들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길래 "고려대를 다니면서 야구를 한다"고 했더니 그 다음날부터 맨앞에 앉아 말을 하지 못해도 계속 시켰다. 그 덕분에 입이 트이게 됐다. 그 강사하고 지금까지 연락하면서 지낸다.

영어공부를 한 이유는 코치연수를 해외로 가게 되면 대화는 해야할 것 같아 미리 준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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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해영(가운데) 현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코치(전 야구선수)가 송정훈 에너지경제신문 금융부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사진=복현명 기자)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박사를 졸업 후에 대학을 알아봤는데 강사로도 지원할 수 있는 대학이 없었다. 거의 외국에서 학위를 받아와야 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선수를 은퇴하고 야구해설도 한 적도 있어 지금도 프로팀에 들어가려고 시도를 하고 있다. 선수가 아닌 코치를 거쳐 궁극적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이다.

친정팀인 롯데자이언츠에서 불러주면 좋겠지만 지금은 어느팀이라도 불러주면 가고 싶다. 

나는 유니폼을 입고 있을때가 가장 행복하다. 아직 야구팀 감독, 코치도 해보지 못해 쉽게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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