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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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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2000억원 사기’ 키코사태 재조사?...지금 시점에 ‘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09.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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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금융정의연대, 민변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가 참여해 ‘키코(KIKO) 피해 사례 종합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 복현명 기자] 피해규모만 약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는 키코(KIKO, Knock-in Knock-out)사태가 9년만에 재조사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적폐청산’을 화두로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기대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키코 피해기업들은 키코 상품을 판매한 시중은행에 대한 사기죄 적용을 주장하며 검찰의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키코사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수 많은 중소기업들이 잘못된 환헤지(hedge)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입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폐업하거나 법정관리, 워크아웃 사태를 의미한다. 키코는 기업과 은행이 환율의 상·하단을 정해두고 그 범위 안에서 미리 약정한 환율로 거래하는 외환파생상품으로 금융위기 이전 저환율이 지속되던 때 은행들은 "앞으로도 환율이 계속 내려갈 것"이라며 수출기업들에 키코 상품 가입을 권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권유와는 달리 환율이 올랐고 수출 기업들이 수익을 내야함에도 키코 상품 가입으로 손해를 입게 됐다. 다시말해 확률이 약정해 놓은 하한선 이하로 하락하면 계약은 무효가 되지만 상한선 이상으로 오르면 기업이 약정 금액의 2배로 은행에 되팔아야 해 환율이 올라갈 것을 예측한 은행만 돈을 벌게 된 셈이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가 2014년 서울중앙지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수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시중은행 본점 딜러는 지점 직원과의 통화에서 키코가 은행에 과도한 마진을 남기는 상품으로 명시돼 있다. 이후 피해기업들은 손해배상을 빠르게 받기 위해 ‘은행의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만 소송을 진행했다.

그 당시 금감원은 키코 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이 환헤지가 아닌 투기 목적으로 거래를 하다가 손실을 봤다고 판단했다. 이에 2010년 키코를 판매한 시중은행 9곳의 임직원 68명을 징계했지만 ‘불완전판매’ 혐의 조차도 적용하지 않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지난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010년 당시 키코 사태에 대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보고서를 공개하고 "은행들이 ‘키코사태’로 인해 최대 40배의 폭리를 안았지만 738개 회사가 3조2000억원의 손실을 본 대형사고"라며 금융당국의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에 금융감독원 측은 "검찰 수사와 대법원의 판결에서 은행의 키코 판매가 불공정하지 않다고 나왔지만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지는 않았다"며 "그 당시 은행들에게 건전성 측면에서의 문제 삼은 것으로 알고 있고 아직까지 재조사 여부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 키코사태가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아닌 ‘사기’로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금감원의 재조사를 요청하는 분위기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사법부 적폐청산’의 관점에서 ‘최순실 사태’로 집행유예를 받은 조윤선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키코 상품 판매가 한창이던 2008년 초까지 씨티은행 부행장으로 일하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전력이 알려지면서 2013년 대법원이 키코 사태 민사소송과 관련해 은행의 편을 들어주게 된 재판 과정에서의 연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역시 당시 검찰총장도 사건이 불기소되도록 영향을 줬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일부 시민단체(약탈경제반대행동)도 그 당시 키코 상품을 권유한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형사소송을 재개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은행들이 고금리 전환을 예상했음에도 키코 상품을 과도하게 판매했다는 이유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13일 대정부질문 자리에서 "법무부장관과 협의해 재수사 여부를 판단하겠다"며 "은행이 그 당시 수수료가 없다고 말했는데 금리의 0.2%가 수수료였으며 법무당국이 키코사태에 대해 재검토해 주길 바란다"고 말해 현 정부의 ‘적폐청산’의 의지가 키코사태에도 적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키코사태에 대한 재판이나 수사는 모두 중단된 상황이다. 피해기업들은 은행들이 ‘불완전판매’를 했다며 민사소송을 제기했으나 2013년 9월 대법원이 "은행이 키코상품을 판매한 것 은 불공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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