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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View] 트럼프식 '에너지우위' 전술...LNG시장서 통할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7.11.13 08:02

천연가스 수출 +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시험대?

-트럼프 아시아 순방, 대(對)중국 천연가스 수출 늘릴 기회 
-美 LNG 수출 증가 추세…중국 구매자와 장기계약 맺은 美업체는 아직 없어
-애널리스트들 "카타르 호주 등 막강한 경쟁자 탓에 중국 LNG 시장 돌파에 걸림돌"
-한국도 미국산 LNG 수입으로 공급선 다변화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지난 5일부터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한중일 3개국 순방은 ‘돈(무역)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북핵이 이번 순방의 최대 의제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안보 이슈를 지렛대 삼아 3개국을 차례로 돌며 수백조원대에 달하는 선물 보따리를 두둑이 챙겼다는 점에서 트럼프 특유의 사업가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세번째 방문국인 중국에서 무려 ‘2535억 달러’(약 280조원)에 달하는 미중 경협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한중일 무역 순방의 ‘정점’을 찍었다.

중산(鍾山) 중국 상무부장은 "양국 기업이 기적을 만들었다"며 "2535억 달러라는 금액은 미중 경협 사상 최대 규모이며 세계 경협 역사에서도 신기록"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같은 ‘성과’는 철저히 계산된 협상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280조 원의 선물 보따리 중 가장 큰 거래는 시노펙(중국명 중국석화)의 딜이었다. 시노펙은 약 70억 달러를 투자해 송유관 건설과 알래스카에서 천연가스전을 미국 회사와 공동 개발키로 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시노펙이 원자재 중개업체 프리포인트와 사모펀드 아크라이크캐피털 파트너즈와 제휴를 통해 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은 ‘시노펙, 프리포인트, 아크라이크캐피털이 텍사스 퍼미안분지의 셰일 오일을 걸프만으로 보내기 위한 송유관(700마일)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대 200만배럴을 적재할 수 있는 ‘초대형유조선(VLCC)’을 위한 항만 터미널 건설도 시노펙이 참여한다.

시노펙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미국은 걸프만 원유 수출을 늘리고 캐리비언 소재 원유 저장설비를 확충할 수 있다. 블룸버그는 시노펙 투자건으로만 연간 100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예상했다. 중국도 성장하는 미국의 셰일시장을 활용해 원유수입원을 다각화할 수 있다.


◇ 트럼프 亞 순방 목적은 중국에 LNG 수출 늘리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


거래 규모는 시노펙이 가장 컸지만, ‘미국 우선 에너지 중심 계획(America First Energy Plan)’을 적극 추진 중인 미국이 에너지 분야에서 가장 공들이고 있는 것은 셰일가스 수출이다.

트럼프 아시아 순방단에는 천연가스 경영진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번 순방의 목적은 중국으로 더 많은 천연가스를 수출하려는 데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어느 정도 거래가 이뤄질 지 시작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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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아시아 내 비OECD 국가들, 중동, 유럽·유라시아, 아시아외에 비OECD 국가들, OECD 지역별 천연가스 소비 . (표=EIA)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은 탈석탄화 정책에 힘입어 향후 수년 안에 최대 천연가스 시장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트럼프 정부가 급격히 확대되는 천연가스 수요에서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앞서 지난 5월 미국 상무부가 베이징 당국과 함께 미 액화천연가스(LNG) 기업들과 장기계약을 허용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 역시 중국 천연가스 시장 진출 전략의 일환이다.

LNG 수출량 극대화는 트럼프 "에너지 우위" 정책의 핵심으로, 2019년까지 5개의 LNG 수출터미널이 가동을 시작하면서 미국이 LNG를 가공할 수 있는 용량이 7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 아시아 LNG 가격, 10년래 최저…미국 진출 여력 충분

다만, 미국이 마주하고 있는 장벽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세계 LNG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카타르, 말레이시아, 호주 뿐 아니라 파이프라인을 통해 저가에 중국으로 가스를 수출하는 러시아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LNG 시장에서 미국 LNG 공급업체들이 차지할 부분은 아직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미중경제안보검토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LNG 수출은 올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7월까지 중국으로 수출된 미국의 LNG는 1억3900만 달러(한화1556억 2440만 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총 수출규모인 1억37000만 달러를 넘어서는 것이다.

업계 전문가는 아시아로의 운송비용이 아직까지 낮은 수준이고, 아시아시장 내 LNG 가격이 10년래 최저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회는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이는 중국이 석탄 대신 천연가스를 구매하도록 장려하는 유인이라고 전문가는 덧붙였다.

아울러 중국의 5개년 경제계획에서 발전원 믹스 내 석탄 사용량을 줄이고 천연가스 비중을 높이도록 한 점 역시 중국 시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잠재력도 충분하다. 최근 체결된 트럼프와 중국 간 협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의 구매업자들은 미국산 LNG를 제3자로부터 단기적인 현물 거래로 구매하고 있다. 현재 미국으로부터 LNG를 대량으로 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기업은 셰니에르 에너지 뿐이다.

셰니에르의 잭 푸스코 최고경영자(CEO)와 텍사스 LNG의 랭트리 메이어 업무최고책임자(COO)는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단에 합류했다. 두 기업은 중국에서 이루진 거래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언급은 거부했으나, 에너지 전문 컨설팅 기업 우드 맥킨지는 에너지 관련 계약이 트럼프 방중의 핵심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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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NG 수출 용량. 루이지애나 주 사빈패스, 매릴랜드 주 코브 포인트, 루이지애나 주 카메론, 조지아 주 엘바 아일랜드, 텍사스 주 프리포트, 텍사스 주 코퍼스 크리스티. (표=EIA)


우드맥킨지의 케리-앤 생크스 아시아 가스·LNG 분야 대표는 지난 주 CNBC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에너지 업계를 포함해 수많은 재계 경영진들을 이끌고 베이징에 도착했다"며 "이는 미 정부가 이번 순방을 통해 구체적인 상업 계약을 체결하려 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천연가스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우드맥킨지는 지난해 2060억 큐빅피트였던 천연가스 수요가 2020년 3300억 큐빅피트까지 늘어날 것이라면서 2025년까지 늘어나는 중국의 에너지 소비 증가분 중 3분의 1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가격 등 측면에서 장애물도 갖고 있지만, 늘어나는 중국의 천연가스 시장을 잡을 이점도 충분히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 카타르·러시아 등 경쟁 치열…중국 자체매장량도 상당해


한편으로는 중국 정부가 미국산 LNG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꺼려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안보는 국가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영국의 위험분석 컨설팅 전문업체 베리스크 메이플크로프트의 휴고 브래넌 아시아 담당 애널리스트는 "향후 중국의 LNG 구매업체들이 더 나은 조건의 계약을 찾게 되면, 미국의 가스 가격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LNG를 수입하는 데 필요한 가스 액화·운송에 드는 고정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카타르나 호주와 같은 국가들에 비해 미국산 LNG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무부가 중국과 LNG 계약을 체결한 직후, 카타르는 2024년까지 천연가스 수출을 30%까지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중국이 미국과 이번 계약을 체결한 것은 미국으로부터 LNG를 구매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카타르와의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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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말레이시아, 호주, 오만, 브루나이, UAE, 인도네시아, 기타. (수출국) 일본, 한국, 중국, 대만, 싱가포르, 기타. (수입국) 남중국해 LNG 무역 흐름.(표=EIA)

브래넌 애널리스트는 "그러나 미국의 LNG 기업들은 선적 물량 면에서 더 높은 유연성을 제공한다"면서 "미중 간 경협으로 구매자들이 잉여 물량을 재판매할 수 있게됐다는점에서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LNG 수입에 있어 다각화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고 싶어하는데, 미국으로부터 셰일가스를 수입하게되면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양국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우드맥킨지는 또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양국 간 파이프라인 건설이 완공되면, 선박을 통해 수출해야 하는 미국산 가스보다 러시아산 가스의 가격 경쟁력이 유럽 내에서 월등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드맥킨지는 "최근 중국과 러시아 간 긴장감이 다소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시 주석 들어 양국 간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며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와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전략이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맥킨지는 "에너지 협력이 양국 관계의 핵심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중국 자체 생산량 역시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중국은 기술적으로 미국 2배 이상의 셰일가스 자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셰일가스 부국이다. 인프라 부족 등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고전 중이긴 하나, 2030년 중국은 자국 내 수요 중 3분의 1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 EIA는 관측했다.

베이징 당국 역시 셰일가스 개발에 대한 야심이 상당하다. 차이나데일리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셰일가스전에 대한 탐사개발에 집중해 2020년까지 1조㎥로 셰일 매장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인프라 뿐 아니라 복구기술에 대한 투자도 포함된다.

또 당국은 셰일가스 생산량을 2020년 300억㎥, 2030년 800억∼1000억㎥로 확대할 계획이다.

중국의 셰일혁명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천연가스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세계 에너지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오일프라이스의 이리나 슬라브 전문가는 "중국은 최대 셰일가스 생산지인 미국의 1.7배의 부존량을 보유하고 있는 최대의 셰일 자원부국"이라 강조하면서 "셰일 개발 성공으로 대규모 증산이 이뤄질 때, 미국보다도 천연가스가격 하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녀는 "러시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유럽시장의 에너지 역학구도도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며 "최근 미국이 유럽 에너지 시장 진출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직접 나선 가운데, 중국이 셰일가스 개발을 확대할 경우 미-러-중 삼국이 가스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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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40년 중국 천연가스 공급 전망치. 천연가스(LNG) 수입, 파이프라인, 천연가스(셰일) 생산, 메탄가스, 저장기체. (단위=10억 큐빅피트, 표=EIA)


◇ 한국도 미국산 LNG 수입으로 공급선 다변화

중국이 무역적자 해소 방법으로 셰일가스 수입 확대를 내놓은 가운데, 일본도 미국산 셰일가스 판로 구축 지원을 위한 1조엔(약 10조원) 펀드를 선물로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의 "에너지 우위" 정책은 중국, 일본을 너머 한국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가스공사는 2012년 셰니에르 에너지가 지분 100%를 보유한 사빈 패스와 장기 LNG 매매 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최초로 미국산 셰일가스 물량을 확보했다.

계약에 따라 가스공사는 올해부터 2036년까지 연간 280만톤의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기로 했고, 첫 수입분이 7월 가스공사 통영인수기지에 도착했다.

가스공사 관계자는 "미국산 셰일가스 수입이 중동 중심 공급선을 다변화하는 동시에 한미 간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와 협력관계 증진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동산 LNG는 도입물량이 남아도 다른 나라에 되팔 수 없는 반면 미국산은 구매자가 계약물량 전체를 자율적으로 처분할 수 있다"며 "국내 천연가스 수급 상황이 급변할 때 수급 조절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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