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펌프잭. (사진=AP/연합) |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미국 셰일혁명의 중심, 서부 텍사스. 셰일혁명이 세계 원유시장을 강타한 지도 어느 새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 사이 유가는 끊임없이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설비 가격과 인건비 등 텍사스 주 내 자산가격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엑손모빌 등 석유공룡들은 값비싼 텍사스 퍼미안(Permian)지역 대신 인근 뉴멕시코주로 눈길을 돌리는 모양새다. 트럼프 정부의 셰일 친화 정책이 예고된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유전을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뉴멕시코는 매력적인 선택지다. 그간 인프라가 미비한 점이 한계점으로 지적됐으나, 최근 두 개의 송유관 프로젝트가 개시되면서 잠재력이 더욱 높아졌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석유공룡’ 엑손모빌도 뉴멕시코 주 ‘눈독’
오일프라이스에 따르면, 엑손모빌(Exxon Mobil Corp.), 쉐브론(Chevron Corp.), EOG 리소시스(EOG Resources Inc. ), 옥시덴탈 페트롤리움(Occidental Petroleum Corp.) 등 미 최대 시추업체들은 텍사스주 내에서의 투자를 줄이고, 뉴 멕시코주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에 본사를 둔 최대 상장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올해 1월 56억 달러(한화 6조 1521억 6000만 원)를 투입해 배스가(家)가 소유한 34억 배럴 규모의 뉴멕시코주 델라웨어 유전을 매입했다. 엑손 측은 매입 당시 25만 에이커의 유전에서 향후 20년간 시추할 수 있게 됐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자본이 풍부한 엑손모빌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뉴멕시코주 리카운티에 위치한 경제개발공사(EDC)의 스티브 비에르크 대표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석유가스기업들은 지난 2년 사이 인수합병을 통해 130억 달러의 투자금을 쏟아 부었다"고 밝혔다.
늘어나는 자본금에 힘입어 뉴멕시코주의 산유량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 말 기준 뉴멕시코 주 전체 원유 시추공수 69개 중 리카운티 지역의 시추공수는 38개로 집계됐으며, 리카운티의 원유 시추공 수는 지난 5월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16년 10월 리카운티의 원유 시추공 수가 17개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년 사이 두 배가 뛴 셈이다.
뉴멕시코 주 전체로 눈을 넓혀도 상황은 같다. 유전 정보 서비스업체 베이커 휴에 따르면, 뉴멕시코 주의 원유 시추공수는 지난 주에만 4개가 증가했으며 전년동기대비 38개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17년 8월 뉴멕시코주의 원유생산량이 46만2000배럴로 지난 5년 사이 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휴스턴에 본사를 둔 투자회사 테크토닉 홀딩스(Tectonic Holdings LLC)의 헤이그 셔먼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퍼미안을 잇는 제2의 셰일혁명 중심지는 뉴멕시코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엑손모빌이 뉴멕시코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좋은 신호로 봐도 좋다는 설명이다.
리카운티의 최대 도시 홉스의 샘 코브 시장 역시 자신감을 보였다. 코브 시장은 "석유기업들이 뉴멕시코의 퍼미안을 택하고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시추업체들도 뉴멕시코가 장기적으로 투자하고 사업 계획을 세우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데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 제2의 텍사스, 뉴멕시코?
에너지 개발 컨설팅 회사인 드릴링 인포(Drillinginfo.com)의 버나뎃 존슨 시장정보 부문 부사장은 "흔히 퍼미안을 이야기할 때 서부텍사스를 떠올리고 뉴멕시코주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러나 뉴멕시코 주 역시 텍사스, 노스다코타, 펜실베니아 등 일부 주와 마찬가지로 셰일혁명의 대표적 수혜지역 중 하나"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쯤에서 저유가의 원흉 셰일혁명의 개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너무 비싸다고 여겨지던 수압파쇄·수평시추 기술이 혁신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자체적으로 수십억 배럴의 원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의 산유량은 셰일 원유의 증산에 힘입어 지난 10년 간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원유산업의 중심지 텍사스 주에서만 하루에 34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2009년 110만 배럴 대비 3배 늘어난 것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14개 회원국 중 3개국 산유량에 달하는 규모다.
셰일혁명 이후 수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퍼미안으로 밀려들면서 입찰 경쟁은 한층 가열됐다. 3년간의 저유가 시기를 통과했음에도 불구하고 2015년 1만9000달러에 낙찰됐던 유전탐사개발권은 현재 3만 달러까지 치솟은 상태다. 반면, 최근 뉴멕시코 같은 경우 에이커 당 1만8000달러에서 2만4000달러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저가매수 기회를 노린 기업들에 힘입어 뉴멕시코주의 거래량이 증가하는 사이, 서부텍사스에서 이뤄지는 M&A 거래는 둔화되고 있다.
◇ "유전 인프라 미비는 최대 한계"…내년 대형 송유관 완공으로 증산 속도 빨라질 듯
그렇다고 뉴멕시코주가 완벽한 시장은 아니다. 낮은 서비스 비용과 인건비, 자산 가격 때문에 ‘블루오션’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생산 효율성이 텍사스와 비교해 다소 떨어지는데다 유전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점은 장벽으로 꼽힌다.
다행히 최근 델라웨어 분지에 두 개의 송유관 프로젝트가 개시되면서 제약요인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비에르크 대표는 "2018년 말 송유관이 가동을 시작하면, 뉴멕시코 주 내 시추활동과 원유 생산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오릭스 미드스트림 서비스Ⅱ(Oryx Midstream Services II, LLC)는 서울∼부산 거리에 육박하는 220마일(354km) 길이의 송유관을 건설 중이며, 2018년 완공 시 델라웨어 분지 내에서 생산되는 40만 배럴의 원유를 운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8월에는 안데버(Andeavor)가 "현재 자사가 델라웨어 유전지대에 계획 중인 코난 송유관 프로젝트는, 뉴멕시코주 리카운티와 텍사스주 러빙카운티 터미널을 잇는 길이 130마일(209km)의 대규모 송유관을 건설하는 작업"이라며 "건설 보증을 위해 제3자 선박업체들로부터 이미 확약을 받은 상태"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시공에 들어갔으며, 2018년 중반 상업용 서비스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비에르크 대표는 "뉴멕시코 주 내에 송유관 등 인프라가 확대되면, 자본투입이 늘어나면서 시추활동과 원유생산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뉴 멕시코주가 에너지 생산으로 널리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퍼미안 유전지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츠베타나 파라스코바 오일프라이스 연구원 역시 "시장참여자들은 모두 서부 텍사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이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뉴멕시코주의 퍼미안이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셰일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