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원 가톨릭대 교수. |
정부가 추진 중인 탈원전, 에너지 전환 정책을 계기로 에너지에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원자력 발전의 의존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해 환경 보전과 안전을 추구한다는 큰 방향에 이견이 있기 어렵다.
하지만 실행 계획을 구체화하는 의견수렴 과정에서 서로 상이한 논리구조와 이해구조를 가진 환경과 에너지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음으로써 본질에서 한참 동떨어진 탁상공론에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변화와 지속가능발전을 앞세운 환경 보호와 보전 이슈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선의 경지에 등극했다. 반면 에너지는 수요와 공급, 기술과 경제성을 따지며 가변적이다. 저마다 상이한 파급효과와 장단점을 지닌 에너지원들에 환경보전이라는 하나의 잣대를 들이댈 경우,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는 사라지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로 변형돼 버린다. 특히 원자력 발전의 환경비용과 안전위험성에 대한 의견 대립에는 진영 논리까지 더해지면서 극단적인 대립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에너지 소비는 석유 33.6%, 석탄 29.6%, 천연가스 23.8%, 원자력 5.2% 재생에너지 1.3%의 비중으로 구성되는데, 화석연료가 92.2%로 압도적이다. 지질시대에 대량으로 땅속에 묻힌 식물이나 동물이 길게는 수억 년에 걸친 탄화과정을 통해 생성된 화석연료는 산업혁명 이후 대량 소비로 급격하게 고갈되고 있는데다 온실가스를 발생시켜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킨다. 우라늄의 핵분열 반응으로 발생한 열을 이용하는 원자력은 발전 단가가 저렴하고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대신 건설비용과 핵폐기물 처리비용이 많이 들고 사고발생시 대규모의 재앙을 감당해야 한다. 기존의 화석연료나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신재생에너지는 수소, 연료전지, 석탄액화가스 등의 신에너지와 태양열, 태양광, 바이오에너지, 풍력, 수력, 지열, 해양, 폐기물 등 8종의 재생에너지를 가리킨다. 미래에너지로 각광받는 신재생 에너지는 환경오염 위험이 적고 발전가능성이 무한한 대신, 고비용 저효율에다 기후와 지형 조건에 의존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에너지는 인간이 활동하는 근원이 되는 힘, 혹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지금 경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에너지의 개념은 물체가 가지고 있는 일을 하는 능력이란 정의에 가깝다. 인문연구자로서 필자는 인간이 활동하는 근원이 되는 힘으로서의 에너지의 개념에 시선이 머문다.
GS칼텍스가 2009년부터 시작한 광고캠페인 ‘아이 엠 유어 에너지(I am your Energy)’는 이 두 차원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멋진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에너지=연료라는 등식에서 탈피하여 에너지의 개념을 인문의 영역인 정서적 에너지로까지 확장했다. ‘사람과 사람간의 성원과 격려’라는 가치를 담아내고 ‘당신에게 힘이 되는 에너지’ 라는 메시지로 소비자의 공감대를 넓혔다. 내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곧 나의 에너지라는 감성적 터치가 여운에 남는다.
며칠 전 칼럼니스트로 필명을 날리고 있는 지인이 전화를 걸어 ‘한국의 50대, 60대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을 것 같은가‘란 질문을 해왔다. 필자에겐 이 질문이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한국의 50, 60대들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무엇이냐는 물음으로 해석됐다. 아이들은 다 자라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고 더 이상 아침마다 출근할 일도 없으며 설렘과 떨림의 감정이 떠나간 빈 자리에 들어선 주름과 흰 머리가 늘어가는 50,60대들을 다시 설레고 떨리며 가슴 뛰게 만드는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주변 친구들을 보면 색소폰연주나 탱고 살사 등의 춤, 산악자전거,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같은 활동을 통해 떨림을 다시 느껴보려는 부류와 관상 풍수 명리학 중국어 등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부류로 크게 나뉜다. 미술, 성악, 요가 같은 취미활동을 같이 하면서 만난 이성과 뒤늦은 열정을 불사르는 경우도 가끔은 있는 듯하다. 정치권의 386들에겐 복수와 적폐청산 혹은 촛불정신의 계승이 자신의 삶을 추동하는 에너지일 것이다.
물리학에서는 물리량을 스칼라와 벡터로 나눈다. 스칼라는 질량 밀도 전하량처럼 방향의 구별이 없이 하나의 수치만으로 표시되는 양이다. 반면 벡터는 힘 속도 가속도처럼 크기와 방향으로 정하여지는 양이다. 한국사회의 에너지를 스칼라로 측정하면 높게 나와 매우 역동적이고 잠재력이 큰 나라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벡터로 환산하면 반대 방향으로 양분돼 총량은 훨씬 줄어들지 모른다. 한국사회를 이끌고 가는 에너지 부족을 우려하기에 전에 국민 각자를 뛰게 만드는 에너지가 과거와 미래중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 보아야 한다.
2017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번쯤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에너지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