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기업 총수가 구속되면 기업의 투자 결정도 그 순간 모두 스톱된다."(삼성전자 협력사 모임 ‘협성회’)
삼성전자 협력사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석방을 위한 탄원서 제출을 준비 중인 가운데 실제 이 부회장의 구속(지난 2월)을 기점으로 이 회사 사내 유보율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 이재용 구속 후 사내 유보율 1500% 대 늘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연합) |
삼성전자가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9월말 기준 사내유보율이 2만3529%를 넘어섰다. 이는 자본금의 235배가 넘는 돈이 곳간에 쌓여 있다는 소리다.
특히 이 부회장 구속 직전인 작년 말 기준 2만2004%였던 이 회사 유보율이 구속 직후까지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다가, 3분기 들어 사내유보율이 전년대비 1525%p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부회장 구속 직후인 올 1·2분기 삼성전자의 유보율은 각각 2만2410%, 2만2688%였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유보율이 높으면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투자나 배당, 상여 등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보율을 계산할 때 잉여금에 현금뿐 아니라 토지나 공장, 설비도 포함된다는 점에서 유보율만 놓고 투자 소홀 여부를 판단할 순 없지만 사내에 얼마나 많은 자금을 축적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기초 자료가 되곤 한다.
◇ 삼성, ‘투자시계’ 멈췄나…대규모 M&A ‘스톱’
▲삼성. (사진=연합) |
지난 10월 용퇴를 선언한 삼성전자 권오현 부회장은 당시 "지금 회사는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다. 다행히 최고의 실적을 내고는 있지만 이는 과거에 이뤄진 결단과 투자의 결실일 뿐"이라며 "미래의 흐름을 읽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권 부회장의 이 발언을 두고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미래를 대비한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멈췄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물론 삼성전자가 투자를 급격히 줄이지는 않았다. 올해의 경우 올 3분기까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분야 등에 32조 9000억 원을 집행했다. 여기에 추가로 4분기 내 약 13조 원가량을 반도체 분야에 투입한다는 게 삼성전자의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설비투자에 들인 금액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렇지만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반도체 슈퍼호황으로 인한 실적 증대, 그리고 그로 인한 역대 최대 이익, 사내 유보금 증가 등 청신호에도 불구하고 신수종사업 확대엔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실적은 늘고 있어도 총수 공백이 장기화되다 보니 지난해 약 10조 원을 투입해 인수했던 하만 건 같은 대규모 M&A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새로운 분야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위험한 신호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