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정의 눈] 언론계 #미투..들풀처럼, 부드럽게 살아남길

이현정 기자 kotrapeople@ekn.kr 2018.02.11 18:4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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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이현정 기자


[에너지경제신문 이현정 기자] "나는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췄으니 완전 악연 중의 악연이다. 너같이 생긴 애 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1월 29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다.

며칠 뒤 최영미 시인이 문학계 성추문을 폭로했고, 이어 정치계 인사들도 줄줄이 폭로에 동참하고 있다.

언론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최근 파이낸셜뉴스와 YTN에서 근무했던 전직 기자도 자신의 경험을 고백했다.

다른 이들의 에피소드를 끌어올 것도 없다. 기자 역시 다양한(?) 경험이 있다.

"그 양반들이 너를 보면 뻑갈 거야. 이것저것 얘기할 거라고." 상사는 열에 들떠 이같이 말했다. 왜 그리 신난걸까. 어찌보면 칭찬 같이 들렸다. 칭찬으로 듣고 싶었다. 하지만 상사는 이후에도 수차례 그 말을 반복했다. 가서 ‘뻑가게’ 만들어내라는 뜻인가 싶어질 정도였다. 모호한 말이지만, 그 ‘뻑간다’는 표현이 뛰어난 업무 능력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또 다른 선배는 티셔츠를 입은 기자를 보고는 "오우, 아니 이 정도인 줄 몰랐네"라며 눈을 떼지 않았다. 이어 "아, 이런 것도 성희롱인가. 아닌 거 알지? 우리 사이에 그런 거 아닌 거 알잖아."라고 했다.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 ‘그런 류의 말을 주고 받아야 되는 사이인가?’, ‘우리 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면, 더욱 예의를 지켜야 되는 것 아닌가’…. 선배를 앞에 두고 한참 생각에 빠졌다.

기자가 겪은 정도는 소위 ‘애교’에 가까운 발언이다. 그만큼 젠더폭력은 사회에 만연해 있어 저 정도는 미투 동참 거리도 되지 않는다. 대기업 사장 출신 인사가 인터뷰 후에 "처음 본 순간부터 널 먹고 싶었어" 정도는 해줘야 심각성이 느껴진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사례들 속 남성들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아니다. 우리 주위 평범한 인사들이다. 그 사실이 여성들의 환멸을 극대화시키는 지점이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 특유의 권위적 조직문화가 있다. 또한 구조에 편승해 교활해진 그들이 있다. 인식의 전환이 단절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길, 남성들이 인식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벌써부터 미투운동을 조롱하는 ‘미쓰리’, ‘미투지겹다’ 등이 나오지만 힘을 내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10개월 된 딸이 있는 남자 기자 후배는 "딸이 커서 사회 생활을 할 때, 건강한 사회였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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