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유통업계 상도(商道), 계영배의 교훈

에너지경제 ekn@ekn.kr 2018.02.12 14: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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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규 (중소기업중앙회 산업통상본부장)

최윤규(중기중앙회-수정)

상인에게는 상도(商道)라는 최소한 지켜야 할 상인윤리가 있다. 물건을 제값에 팔기, 약속한 물건을 제때 납품하기, 같은 업종 바로 옆에 개점하지 않기 등 서로 신뢰하고 용인하는 상도덕이 있다.

이처럼 상도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쓰였지만 지난 2000년 고(故) 최인호 작가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소설이 발간될 당시인 1997년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되면서 대규모 점포 개설이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완화되었고, 이로 인해 2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펴보면 전통 재래시장과 동네 슈퍼마켓이 사라졌다.

사실 대형유통사들이 경영하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인근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면서 소위 상도라는 말 자체가 무색해져 버린 지 오래다.

2002년 42조원에 달하던 전통시장의 매출은 2011년 21조원으로 절반 가까이 반 토막이 나버린 반면에 같은 기간 대형마트 매출의 경우 18조원에서 42조원으로 되레 두 배 이상 껑충 뛰어 올랐다.

그나마 전통상업보존구역 지정, 영업시간 제한 등 유통 대기업과 경쟁이 불가능한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을 위한 보호규범 덕분에 어느 정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간 ‘유통산업발전법’은 골목상권 몰락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로 여겨졌다. 하지만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 바로 복합쇼핑몰, 전문점 등 신종유통업종이다.

모바일 확산으로 온라인쇼핑이 75조원의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조만간 편의점도 일본처럼 인구 1250명당 하나 꼴로 천국이 된다고 한다.

이처럼 유통환경은 급변하고 강산이 두 번 바뀔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나라 ‘유통산업발전법’ 시계는 멈춰져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유통시장 자체가 변화를 거듭하는 만큼 오래된 관련법(유통산업발전법)도 손질해 시대 흐름에 맞도록 고쳐나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20대 국회에서만 29건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단 한건밖에 통과되지 못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개정(안)들의 골자는 유통 대기업과 전통시장, 소상공인이 함께 사는 길(相道)을 모색하자는 것인데 번번이 규제논리를 내세워 반대에 봉착하는 형국이 이어져오고 있다. 서민들의 최소한의 상생 요구를 규제로만 접근하는 대기업들의 인식이 아쉬울 따름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란 술잔을 늘 옆에 두고 과욕을 자제하면서 재산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의미다.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節酒杯)라고도 불리운다.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그 술이 밑으로 흘러내리게 만들어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과욕을 경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계영배는 원래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의기(儀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공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스스로의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늘 곁에 두었던 의기를 보고 난 후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실학자 하백원과 도공 우명옥이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계영배가 던지는 메시지는 7할이다. 7할이 되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고 거기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나머지 넘치는 3할 이상은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라는 의미다.옛부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것은 상도(商道)의 가장 기본 철학이었다.

겨울이 더욱더 깊어지기 전, 우리 대형유통업도 ‘이(利)’를 추구하기 보다는 ‘의(義)‘를 추구하는 올바른 혁신의 길(相道)로 나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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