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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20년 이어진 ‘대우그룹 해체’ 악몽···한국GM 미래는?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2.13 15:40

▲한국GM 군산공장 전경. (사진=연합)


[에너지경제신문=여헌우 기자] 지난 1999년 한국을 충격에 몰아넣었던 ‘대우그룹 해체’의 악몽이 대우자동차를 인수한 한국지엠을 통해 20여년간 계속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철수설’을 흘리며 정부와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에 대한 자금 지원에 동참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또 한 번 수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할지 여부를 두고 고민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미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며 지역 경제에 심각한 타격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지엠의 회계 장부를 먼저 들여다본 뒤 본사 측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순서라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GM이 호주 등 다른 나라에서도 이 같은 ‘먹튀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점에서 우리 측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을 수혈한 데 이어 한국지엠까지 논란의 중심에 서며 과거 대우그룹의 어두웠던 그림자가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뒤흔들고 있는 모양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올해 5월 말까지 군산공장의 차량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밝혔다.

카허 카젬(Kaher Kazem) 한국지엠 사장은 "이번 조치는 한국에서의 사업 구조를 조정하기 위한, 힘들지만 반드시 필요한 우리 노력의 첫걸음"이라며 "최근 지속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한국지엠 임직원, 군산 및 전북 지역 사회와 정부 관계자의 헌신과 지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엠은 노동조합, 한국 정부 및 주요 주주 등 주요 이해관계자에게 한국에서의 사업을 유지하고 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했다. 제시안에는 한국에 대한 대규모의 직접적인 제품 투자 방침 등이 포함됐다.

한국지엠은 최근 3년간 누적 적자 2조 원을 넘길 정도로 심각한 경영 위기에 놓여 있다. 판매 부진에 따른 공장 가동률 하락, 고임금 저효율의 구조적 문제 등이 겹치며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최근 GM 측은 우리 정부에 유상증자를 통한 현금 투입, 세금 혜택, 대출규제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리 앵글 GM 해외사업부 사장은 지난해 말 한국을 찾은 뒤 올해 1월 초까지 이 같은 내용을 관계자들과 논의했다. 이후 지난 7일 다시 입국해 11일까지 국내에 머물렀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지엠이 회생을 위해 3조 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GM은 산업은행에 5000억 원 가량의 고통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지엠 지분은 GM 본사가 76.96%, 산업은행이 17.02%, 중국 상하이자동차가 6.02%를 들고 있다.

기획재정부 측은 이와 관련 "배리 앵글 GM 사장과 지난달 만났다"며 "구체적 제안은 아니었고, 정부의 대략적인 협조를 요청받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한국지엠의 경영 위기가 본사의 계략에 따른 ‘의도적 부실’이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지엠이 GM 본사(GM홀딩스)로부터 수년간 2조 4000억 원 가량을 빌리면서, 연 5%에 달하는 높은 이자를 내왔다는 게 이 같은 주장의 근거다. 이 때문에 한국지엠은 매년 1000억 원이 넘는 과도한 이자를 본사에 납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출 대비 원가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점도 ‘의도적 부실’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로 꼽힌다. 한국지엠의 매출원가율은 지난 2009년 90%를 넘어섰고 2015년에는 97%를 찍었다. 이를 통해 한국지엠이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본사에 차량을 판매했다는 것. 일각에서 ‘일부러 적자를 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지엠 경영 위기의 원인이 GM 본사에 있다 해도 우리 측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신차 출시, 마케팅 등 대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구조라 본사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이다.

GM이 그간 ‘먹튀 전략’을 구사해 왔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라는 분석이다. GM은 최근 들어 호주, 인도네시아, 태국, 러시아, 인도 등에서 철수하며 구조조정을 공격적으로 단행하고 있다. 특히 호주에서는 정부로부터 약 1조 7000억 원의 돈을 받아 챙긴 뒤, 지원금이 끊기자 곧바로 철수를 결정했다.

반면 한국지엠 매각이나 철수 등을 거부할 수 있는 산업은행의 ‘경영권 유지’ 권한은 지난해 10월 만료됐다. 회사에서 일하는 임직원은 1만 6000여명에 이른다. 2·3차 협력사를 감안할 경우 30만개에 가까운 일자리가 얽혀있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한국지엠이 철수할 경우 그 피해가 상당하다는 뜻이다.

이미 군산 지역경제에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지역은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이후 직·간접 고용 노동자 5000여명이 일자리를 잃는 아픔을 겪은 바 있다. 군산산업단지 입주 기업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의 경제 규모는 60~70%에 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폐쇄 이후 계약직 포함 2000여명을 대상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업계에서는 직·간접 고용자를 포함할 경우 약 1만여명에 달하는 근로자가 일손을 놓게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 한국지엠은 지난달 국내 시장 7844대, 수출 3만 4557대 등 총 4만 2401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전년 동월 대비 9.5% 하락한 수치다. 내수 판매는 32.6% 급감했고 수출도 1.8% 줄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지엠은 쉐보레 브랜드 유럽 철수 등으로 인해 판매는 매년 줄어드는데 임금은 매년 7만~8만 원씩 오르고 성과급도 1000만 원 가량씩 지급했다"며 "효율성이 떨어져 있는 상황이라 어떤 방식으로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군산공장 문제와 별개로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여부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된다"며 "글로벌 인기 차종의 국내 생산을 배정 받는 등 장기적으로 회사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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