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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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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화재 시 비상 탈출구만이라도 확보하라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3.05 14:32
윤덕균 교수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윤덕균.

문재인 대통령의 적폐인식에 100% 동의한다.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화재안전대책 T/F를 구성, 화재취약시설 전반적 점검, 관련 입법 뒷받침 등 강도 높은 대책을 촉구했다. 충북 제천 복합시설 대형 화재에 이어 경남 밀양 병원의 화재에 따른 안전관리 강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특히 경남 밀양 병원 화재는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국민안전을 정부의 핵심국정목표로 삼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고 밝히면서 ‘국민안전’을 주제로 새해 정부업무보고가 이뤄진 지 불과 며칠 만에 발생한 사고라 경각심을 더했다. 대통령은 또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안전 불감증이나 적당주의야말로 우리가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적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관련 부처와 민간 전문가들이 함께하는 ‘화재 안전대책 특별 T/F’를 만들어 전수조사 수준의 국민생활과 밀접한 전국 약 29만 개 화재 취약시설물에 대해 2∼3월 중 민·관 합동으로 안전점검을 하는 ‘국가안전대진단’을 실시할 계획이다. 점검대상은 건축시설 10만 건, 보건복지시설 6만 건, 생활여가시설 4만 건, 환경시설 3만 건, 교통 2만 건, 기타 분야 4만개소 등이다.

또한 정부는 층간 방화구획을 갖추지 않았거나 가연성 내부 마감재를 사용하는 등 건축법령 위반 건축물을 단속해 법의 실효성을 높일 방침이다. 화재안전 훈련을 내실화하고 매뉴얼의 현실 적합성도 높인다. 각 시설 종사자 대상 체험식 안전교육 및 훈련을 강화하고, 환자안전관리에 취약한 시설의 매뉴얼을 개선하는 한편 실제적인 훈련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병원 일부 환자들이 병상에 묶여있어 구조에 차질을 빚은 것과 관련, 일반병원의 신체보호대 사용 규정도 신설·보완키로 했다. 일견 확실한 문제 인식과 조리 정연한 해법 같지만 역대 정권에서 대형 사고가 날 때 반복된 단골메뉴다. 결과적으로 안전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그 방책이 적폐로 쌓일 뿐이다.

중구난방식 정부 방책이 또 다른 적폐다. 지난해 12월 3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안전사고 발생건수는 총 151만 5065건, 월평균 2만 5251건에 달했다. 5년간 사고가 가장 많았던 것은 교통사고로 9만 2960건을 기록했고, 화재가 1만 7847건으로 뒤를 이었다. 이로 인한 인명피해는 2015년과 2016년 38만 6356명과 36만 7801명을 기록하는 등 매년 37만 4327명(5년 평균)의 사상자를 내고 있다.

이러한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 대응 시스템에 전략적 정렬이 없다. 대책이 백가쟁명, 중구난방이다. 밀양 세종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수가 법 기준에 턱없이 모자라 화를 키웠다는 지적에 대해서 "간호 인력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고 2월 말까지 관련 대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대한 가장 적절한 비유가 바로 부처님의 독화살이다.

어떤 사람이 독화살에 맞았다면 빨리 화살을 뽑아야 한다. 화살을 누가 쏘았나, 무슨 새의 깃털인가 하는 문제는 독화살을 뺀 이후에 처리할 사항이다.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작금의 사태는 정부수립 70년 간 쌓아온 적폐다. 그러나 그것은 안고 가야 할 적폐다. 그런데 소방방재 문제에 간호사 충원문제까지 해결하려고 들면 새로운 적폐가 쌓인다.

최우선 과제로 화재 시 비상 탈출구만이라도 확보하라. 우선순위가 없이 중구난방으로 이루어지는 실천방안은 또 다른 적폐다. 즉시 실천할 것, 중기적인 것, 장기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순서다. 우선적인 실천방안은 화재 시 비상 탈출구를 확보하는 것이다. 중장기과제는 많다. 건물에 층간 방화구획을 만들고 가연성 내부 마감재를 철거하게 하고 화재안전 훈련을 내실화하고 매뉴얼의 현실 적합성도 높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독화살을 뽑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듯, 최소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사람의 생명만이라도 구할 비상 탈출구를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제천 사고가 대형사고로 변질된 이면에는 비상 탈출구가 확보되지 못한 이유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상 탈출구의 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더욱이 비상탈출구의 확보는 가장 값싼 선택이다. 탈출구에 어지러운 물건을 치우기만 해도 된다. 올해 안에 비상 탈출구가 확보되지 못해서 입는 인명피해 제로의 해로 만들자.

소방방재는 기본적으로 과학이다. 장기적으로 KAIST 수준의 소방과학원(가칭) 같은 인재양성 기관과 연구기관을 만들어 소방방재에 과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또 다른 장기과제는 소방에 관련된 진단, 자문, 설비를 과학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전문 업체 육성이다. 전략적 접근에는 기존 건물과 신축건물, 다중 이용 시설과 일반 건물, 대·소형 건물의 차별화 전략을 포함한다. 보험보다는 실질적 방재가 경제적이라는 국민 인식을 확산시킬 입법 조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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