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부조리(不條理)의 뜻은 말, 글, 일, 행동에서 앞뒤가 들어맞지 않고 체계가 서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6개월 전 고리1호기 가동 영구정지식에서 대통령은 고리1호기의 가동정지가 탈핵국가의 출발이며 안전한 대한민국의 시작이라고 하였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그간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이 가격과 효율성을 중시한 반면에 생명, 안전, 지속가능성과 환경은 도외시하였다고 하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지진에 의한 사고라 선언하고 2016년 3월 현재 후쿠시마 주민 1368명 사망하였으며 이를 통해 원자력발전이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음을 보여주었다고 하였다. 이는 일본정부로부터 사실이 아니라는 조용한 항의를 받기도 한 말이다.
건설이 30% 진행된 신고리5·6호기 건설마저 중단하려고 하였으나 반발에 부딪치자 공론화라는 새로운 행정적 시도를 모색하였다. 공론화 결과는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로 나타났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어찌된 일인지 원전비중 축소라는 권한 밖의 권고를 통계적 의미도 없는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무리하게 도출하였다. 심지어 시민참여단에게는 합의되지 않은 사지선다형 설문문항으로 신고리5·6호기 건설재개를 할 경우 필요한 사항을 선택하게 하고 그 결과 원자력 안전기준 강화, 사용후핵연료 해결방안 마련, 신재생에너지 투자확대라는 세 가지 선물을 정부에 안겨주었다.
현재 정부는 이러한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에너지전환정책과 안전규제강화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부조리한 것이다.
한편 정부는 원전수출만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자체장 선거가 마무리되기 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우선협상대상자 몇 개 국가를 발표할 것이고 영국은 여전히 무어사이드(Moorside) 부지에 우리나라 원전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협상이 마무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대통령은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의 바라카(Barakah) 원전1호기 건설종료식에 참석하여 이것이 신이 내린 축복이며, 사막이라는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공기를 준수하였기에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우수성과 대한민국 역량을 확인해 자랑스럽다고 하였다. 바라카 원전건설 성공에 힘입어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를 위한 노력도 가능하게 됐다고도 하였다.
국내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펼치고 해외에는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조리정연한 정책일까? 원전과 관련하여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주식회사, 한전기술, 한전핵연료 등의 눈에 띄는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 건설사 그리고 부품을 조달하는 2000여개의 업체가 있다.
이들 기업은 지금 갈 길을 묻고 있다.
가까스로 신고리5·6호기의 건설이 재개되었지만 신한울3·4호기의 건설은 5100억원이 이미 투자되었고 원자로 등이 선 제작(先 制作)에 착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중단되는 바람에 이들 업체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자재 공급망이 붕괴되는 것이다. 두산중공업을 예로 들어보자. 신고리5·6호기의 제작물량은 2018년을 정점으로 감소하여 2020년이 되면 모두 소진된다. 영국원전을 우리가 수주하여 건설한다고 하더라도 2024년에야 제작할 기자재 제작이 시작된다. 4∼5년의 공백이란 공장 문을 닫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동안 기술인력을 유지할 방법이 없어진다. 그렇게 한번 기술력을 잃으면 세계적인 경쟁력을 다시 회복하기는 어렵다. 2000여개의 업체 가운데 원전기기만 납품하는 업체는 또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없어지는 기업과 일자리에 대해 정부도 고민이 많다. 기업이 없어지면 원전수출도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이들 기업은 감축경영에 들어갔고 일부기업은 원자력사업부서를 줄이거나 없앴다. 이미 2013년 납품비리 사건이후 강화된 원자력안전규제로 인하여 상당수 기업이 원전기자재 생산을 포기한 바 있다.
이번 대통령의 UAE 방문을 통하여 해외에서 우리 원전기술이 얼마나 높이 평가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원전산업이 처한 위기를 목도하며 이것이 국가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예단하고 조리정연한 정책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