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을 때 SNS 계정의 배경을 프랑스국기로 덮어 테러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거나 세월호를 기리는 노란 리본을 옷이나 가방에 달고 다닐 때부터 출현은 이미 예고됐다. 2016년 하반기 촛불시위를 거쳐 2017년 한해는 우리 사회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였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노란 리본이나 태극기 배지로 표출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현상이 소비패턴에서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미닝아웃(meaning out)’의 시대다. 특정 정치 현안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반대나 찬성, 동성애나 페미니즘 등에 대한 지지처럼 개인의 취향과 정치, 사회적 신념을 거침없이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미닝아웃’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미닝아웃’이란 남들에게 밝히기가 조심스러워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정치적·사회적 신념이나 가치관, 취향 등을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소비자 운동인 불매운동이나 구매운동 보다 한층 더 적극적이고 진화한 소비자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미닝아웃’은 특히 패션에서 두드러진다. 패션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좋은 수단이기 때문이다. 패션을 통해 사람들은 민감한 사안이라도 보다 함축적이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표출할 수 있다. 육식을 반대하는 ‘낫 아워스(NOT OURS)’나 아동학대를 반대하는 ‘PLEASE STOP’, 유기동물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는 ‘SAVE ME’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나 열쇠고리, 가방 등의 패션소품을 착용하는 ‘슬로건 패션(slogan fashion)’이 대표적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팔찌와 에코백을 구매하거나 애국심을 표현하기 위해 태극기가 그려진 ‘3·1절 굿즈’를 패션 아이템처럼 착용하기도 한다. 동물복지 차원에서 진품 모피코트 대신 인조모피코트를 구매하거나 환경보호를 위해 업사이클링 (up-cycling) 가방을 사용한다. 한걸음 나가 자신의 이러한 소비습관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해시태그 기능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해시태그의 특정 키워드를 통해 손쉽게 사회문제를 환기시키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사회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의식주 가운데 패션 못지 않게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 먹거리다. 그런 만큼 환경 보호, 동물 복지, 공정무역 등에 중점을 둔 윤리적 미닝아웃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환경 보호 외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먹거리 이슈는 식용 가축의 동물복지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12년부터 시행중인 동물복지 축산농가 인증제도와 관련하여 지난해 11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물복지 인증 제품에 대해 ‘가격이 비싸더라도 구매하겠다’는 응답이 70.1%를 차지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동물복지인증 유정란’이나 안정된 수면 시간 보장, 넓은 사육공간 제공 등의 조건을 충족한 동물복지 인증 농가에서 생산된 원료로 만든 식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러한 미닝아웃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SNS의 발달, 슬로건 패션의 확대 등이 젊은층의 정치참여의식과 그들의 신념을 사적인 영역에 마음껏 표현할 수 있게 돕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증명받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의 인정욕구도 미닝아웃의 발현에 영향을 미쳤다. 이제는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는 것이 아닌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이 튀거나 나서는 것을 유별나게 생각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표현하는 것이 ‘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연구자의 입장에서 문화의 기저부에 있는 가치관과 신념을 스스럼없이 바깥으로 드러내는 미닝아웃은 ‘자신감의 발로’ 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고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안 그래도 사회 모든 분야에서 편가르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미닝아웃으로 인해 가치관과 신념이 다른 집단 간의 반목과 균열이 심화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사회경제적으로는 진보인데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이고, 정치적으로는 현실주의자인데 영화취향은 판타지를 선호하는 필자처럼 복합적인 사람은 가치관과 신념을 어떻게 미닝아웃해야 하나 고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