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부산 전포카페거리 (사진=독자 제공) |
[에너지경제신문 민경미 기자] 서울뿐 아니라 부산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내몰림 현상)으로 둥지를 떠나는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다.
부산 전포카페거리는 지역주민 뿐만 아니라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명물로 꼽힌다. 2017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부산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전포동 공구상가들이 떠난 자리를 청년들이 찾아와 개성과 특색을 갖춘 카페와 맛집을 만들었다. 프렌차이즈의 획일화된 감성과 맛에 싫증난 젊은이들이 전포카페거리를 찾기 시작했고, 이는 곧 입소문을 타고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갔다.
부산 전포카페거리가 유명세를 타자 서울의 홍대, 가로수길, 경리단길처럼 임대료와 권리금이 치솟기 시작했다.
부산 전포카페거리는 초창기에 2000만 원 정도 하던 권리금이 지난해 7000~8000만 원에 달했고, 임대료도 월 60~70만 원에서 많게는 2배 이상 상승했다. 결국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초창기 소상공인들이 떠나면서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채우고 있다. 전포카페거리만의 독창성은 사라지고 그저 흔하디 흔한 상권으로 변해가고 있는 셈이다.
전포카페거리에서 6년간 가게를 영업하고 있다는 A씨는 "부산 진구청은 카페거리에 많은 홍보와 비용을 쏟아 붓고 있지만 정작 카페거리의 터줏대감들은 비싸진 임대료 때문에 내몰리고 있다"고 지적한 뒤, "제 꿈과 청춘을 바쳤던 이 가게는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손님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고 지냈던 시간들은 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한탄했다.
A씨는 "이웃들이 강제집행 당하는 것까지 봤다"면서 "저도 건물주의 재건축으로 인해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로 쫓겨나는데 정치권도 법도 저를 도와줄 수가 없는 현실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후보시절 ‘복합쇼핑몰 입지·영업 제한’ 공약을 내걸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해 5월 25일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젊은 대기업 총수들이 한 일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데 굳이 떠올리자면 골목상권 침범이 떠오른다"며 "좀 더 넓은 글로벌 세상에 가서 경쟁하고 너무 골목으로 들어와서 경쟁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건물을 확보, 소상공인들에게 임차해 해당 지역의 문화 및 상권 다양성을 보존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임대료 상승으로 사업장을 떠나야 하는 임차상인에게 중소기업육성기금 지원을 통해 직접 상가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오래된 상가건물에 대해 리모델링·보수비용을 지원해 상가임차료 인상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장기안심상가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처럼 서울은 각종 정책으로 임차인의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부산은 아직 미비한 편이다.
부산진구청장 서은숙 예비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지난달 22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청년창업을 지원하고 돌보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행정이 필요하다"며 "발생가능한 모든 문제를 제도를 통해 정리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구청이 방관해서는 안 되겠죠"라고 말했다.
A씨는 "도움을 받기 위해 시청과 구청에 민원도 넣고, 블로그를 통해 알리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 방법이 없다’가 전부였다"면서 "서울에 비해 부산은 아직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내몰리는 상인 구제 방안이 마련되지 않았다. 카페거리가 핫플레이스로 떠오르자 떠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상가레이다 선종필 대표는 10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법' 도입이 '지역상권 상생발전에 관한 법률안'과 '자율상권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의 국회 논의과정 중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과 충돌할 수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며 "상생협약을 맺으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해 설정되지만 이 같은 내용이 상가임대차법에 우선하는 특례조항을 두면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상생구역으로 지정되면 임대료 상승률을 제한하고 현행 5년인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 행사기간을 최대 10년까지 늘릴 수 있고, 대형 가맹점이나 대규모 점포의 신규 진입과 영업 제한도 가능하며 보조금과 인프라구축사업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선종필 대표는 "개별 점포의 환산보증금과 상관없이 보호상권 내 상가에는 일괄적으로 특례조항들이 적용되기 때문에 임차인 보호 효과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상가임대차법과 충돌 부분을 해결하는 게 관건"이라며 "중기부는 두 법안을 통합한 '지역상권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가칭)'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