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헌 넥슨코리아 대표. |
[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게임업계 ‘샐러리맨 신화’로 꼽히는 이정헌(39) 넥슨코리아 신임 대표는 자신에게 있어 넥슨은 ‘첫사랑’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 대표는 2003년 넥슨(네오플)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15년 만에 기업을 이끄는 정점에 오른 주인공으로, 업계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 중 한명으로 꼽힌다.
큰 폭의 기업성장과 위기의 순간을 모두 경험한 것은 물론 이 회사에서 인생의 반려자도 찾았다. 하지만 단순히 이런 일들 만으로 첫사랑이란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25일 대표이사 취임 후 석 달 만에 국내 미디어 앞에 선 이 대표는 넥슨과의 첫 만남, 그리고 첫사랑으로 정의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기억했다.
"1997년쯤이었나, 집에서 어머니 몰래 전화기 선을 뽑아 통신을 하다가 온라인게임이란 걸 처음 접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게임 안 세상이란 걸 처음 안 순간이었다.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떄 받은 감동의 10~20배 이상이었달까. 그 뒤로 대학교 생활 내내 게임만 했던 것 같다. 처음 접했던 게임이 바로 넥슨의 ‘바람의나라’였는데, 회사 로고를 보면서 저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넥슨은 첫사랑이다. 이젠 나의 인생에서 넥슨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 대표에 따르면 그가 대표이사로 내정됐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건 작년 12월 전임 대표였던 박지원 넥슨재팬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로부터였다.
이 대표는 "처음 대표 내정 사실을 들었을 때는 너무 기뻤다. 매우 영광스러운 자리이지 않는가.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기뻤다"며 "그런데 그날 밤부터 고민이 깊어졌다. 내 임기 중에 회사가 망하면 어쩌나, 사고가 나면 어쩌나 별별 생각이 다 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 후 김정주 창업주와 입사 이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사실상 면접이라는 생각에 너무 떨렸다"면서 "앞으로 뭘 할거냐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IP도 중요하고 게임도 중요하고 AI가 중요하다는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창업주는 고정관념이나 압박을 내려놓으라고 하더라"고 일화를 전했다.
덧붙여 그는 "회사 성장을 위해 어떠한 것을 달성하라거나하는 미션은 없었다"며 "그래서 오히려 두렵고 고민도 많다. 다만 확실한 건 혼자 결정하지 않겠다는 거다. 좋은 토론을 나눌 수 있는 지금의 조직구조를 앞으로도 쭉 유지할 계획이고, 그러다 보면 오래갈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가 취임한 이후 넥슨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개발조직들의 자율성이 보다 강화됐다는 점이다. 내부 스튜디오는 물론 개발 자회사들을 모두 독립형으로 재편하고 자율성과 다양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바꿨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게임시장 트렌드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고, 각 조직마다의 개성에 기반한 창의적 개발을 독려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또 보다 확실한 자율성 부여를 위해 예산 내에서는 자유로운 인력채용과 개발이 가능하도록 조직문화를 바꿨다.
"대표이사가 된 이후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규개발이었다"고 운을 뗀 이 대표는 "사업도 잘 해야겠지만 어떤 게임을 만들어 어떻게 서비스할 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임기 중에는 ‘다양성’을 보다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다양성을 보다 잘 발현하고 또 그 안에서 더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육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새롭게 재편한 7개의 스튜디오들은 넥슨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나갈 키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며 "스튜디오별 자율과 독립성에 기반한, 개성 넘치고 창의적인 게임이 개발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1시간 여 간담회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십여년 전 모든 아이들이 넥슨의 ‘다오’와 ‘배찌’ 캐릭터를 보면서 기뻐하고 꿈을 키웠다. 지금의 넥슨은 새로운 IP, 모멘텀이 필요한 시기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에서도 통하는 새로운 IP 게임들이 넥슨에 넘쳐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