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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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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 출신으로 채워지더니…경제5단체 '新관치' 우려, 현실로?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6.13 10:25

5人 상근직 부회장 전원, 전직 관료 ‘싹쓸이’
정부 비판 사라지고, 靑 눈치보기 행보 눈살


[에너지경제신문 류세나 기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송영중 상임부회장 선임 두 달 만에 경질 수순에 들어가면서 재계 안팎에서 관료 출신 인물들에 대한 경제단체 요직 기용 문제가 다시 확산하고 있다.

◇ 경총 내분에…경제5단체 부회장 출신 재논란

13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 4월 고용노동부 출신의 송영중 한국산업기술대 교수가 경총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경제 5단체 부회장직 모두를 전직 관료들이 꿰차게 됐다.

경제단체 부회장직은 기업으로 치면 대표이사에 준하는 자리로 여겨진다. 주로 업계의 상징적인 인물이 비상근직의 회장을 맡아 공식행사 중심으로 일정을 챙긴다면, 상근직인 부회장은 단체의 실질적인 내부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역할을 맡는다.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 부회장 자리에는 장관급인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한 전직 관료가,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와 한국무역협회(무협)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중소기업중앙회(중기중앙회)는 공정거래위원회 관료 출신의 인사가 부회장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태다.



각 단체들은 이들의 선임 배경에 대해 관료 출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폭 넓은 네트워크와 경험들이 협회 업무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 같은 선임 배경엔 정부와 정치권, 재계를 오가며 주요현안을 조율하는 가교 역할을 해낼 것이란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재계에서는 각 협회들의 이 같은 결정이 영 탐탁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 정부 들어 경제단체들이 정부 눈치를 보면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친정부 성향의 관료 출신까지 협회에 입성, 자칫 정부에 대한 견제 없이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 경총 부회장에 오른 송영중 전 노동부 고용정책본부장이 취임 한 달 만에 공식자리에서 기존 경총 입장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친노동계 성향 발언을 내놓으면서 재계 사이에선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송 부회장은 노무현 정부 때 노동계 입장을 대변해 온 고용노동부 출신 이라는 점에서 경총 부회장 선임 당시부터 적잖은 우려를 샀던 인물이다. 김대중 정부 때는 청와대에서 노사관계비서관으로 일했던 이력을 갖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송 부회장은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고용정책본부장 등을 역임했던 인물로 취임 당시부터 친노동 성향의 인물이란 평가를 받아왔다"며 "그런 그가 경총 회원사 이익을 대변할 수 있겠냐는 우려가 많았었는데 결국 한 달여 만에 현실화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경총은 노동계 입장이 아닌 경영계를 대변해야 하는 정체성을 띠고 있는데, 송 부회장이 나서 ‘최저임금 산입 범위를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토록하자’고 하니 경영계 입장에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총은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한 각종 노사 관련 기구에 경제계 대표로 참여하는 유일한 사용자 단체로,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인상 등 노사관계 이슈에서 경영계 입장을 대변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실제 경총 마저도 이번 송 부회장 사태와 관련해 ‘경총 방침에 역행하는 행보’였다면서 선긋기에 나선 상황이다. 이와 동시에 경총은 송 부회장을 공식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회장단을 중심으로 그에 대한 경질 논의에 공식적으로 들어간 상태다.

경총이 회장 및 사무국과의 갈등으로 부회장에 대한 경질 논의를 진행하기는 1970년 경총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정관에 부회장 면직에 대한 규정도 없어 현재 송 부회장에게 내린 직무정지가 현재 기준으로 내릴 수 있는 강력한 조치라는 게 경총 측 설명이다.

경총 관계자는 "송 부회장이 소신과 철학이라면서 경총의 입장과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다"면서 "또 부회장으로서 도를 넘는 발언과 행동이 있었는데 이 또한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무정지 상태인 송 부회장의 거취에 대해서는 조속한 시일 내 회장단 회의를 개최해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 산적한 재계 현안에도 ‘강 건너 불구경’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른 경제단체의 역할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이미 각 경제단체들이 재계 현안에 공동으로 대응하거나 협력하는 모습이 사라진 지 오래다.

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전경련 위기를 직접 목도한 여타 단체들이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기업현안에도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들도 부지기수다. 남북경협이나 일자리 창출, 벤처 지원 등 현정부 방향성에 편승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견해들도 있다.

실제 당장 다음 달부터 시행 예정인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각 기업체마다의 볼멘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제도 보안 등을 촉구하는 경제단체의 목소리는 없는 상태다. 당면한 최저임금 인상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재계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민간 경제단체가 재계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임원진들을 외압 없이 자체적으로 선출하고 있다"며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 부회장 자리를 정부 관료 출신들이 모두 장악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덧붙여 "정부가 사회적 과제 해결을 위해 관치를 강행키로 결정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없도록 끝까지 철저히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경제5단체 부회장진의 ‘맏형’ 격으로 꼽히는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1977년 재정경제원 사무관으로 관직에 입문, 대통령비서실 재정금융행정관, 부총리 겸 재경경제부장관 비서실장, 재정경제부 제2차관 등을 역임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전경련에는 작년 2월 합류했다.

같은 해 11월 대한상의 부회장으로 선임된 김준동 부회장은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조정실장 출신으로, 행시 28회로 공직에 입문한 이래 지식경제(옛 산업부) 대변인, 신산업정책관, 산업경제정책관을 거쳐 산업부 에너지자원실장 등을 역임했다. 올 2월 선임된 한진현 무협 부회장 역시 김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산업부 출신으로, 산업부에서 에너지산업정책관, 무역정책관, 무역투자실장, 차관 등을 역임했다.

신영선 중기중앙회 부회장은 공정위에서 시장감시국장, 경쟁정책국장, 사무처장, 부위원장(차관)을 지낸 인물로 한 부회장과 비슷한 시기인 지난 3월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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