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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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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자본주의의 청산과 한반도의 평화로운 일상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8.06.19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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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고명철 교수

세계는 2018년 6월 12일 싱가폴에서 가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국 두 정상의 회담을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 65년 전에는 한국전쟁의 휴전을 위해 한반도의 판문점에서 만났는데, 그로부터 65년 후에는 싱가폴 센토사 섬에서 한반도는 물론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두 나라가 마주한 것이다. 실로 극적 만남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똑똑히 지켜보았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기와 미국의 성조기가 서로 나란히 엇갈리면서 무대 뒤편에 있었고 바로 그 앞에서 양국 정상은 두 손을 힘껏 잡았다. 이것 자체가 변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전개될 양국의 미래에 대한 전조(前兆)를 말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문학사에서 1965년에 발표된 작가 남정현의 단편 ‘분지’가 미국에 대한 풍자를 하자 그것이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조국통일’에 전재됐는데, 그 당시 한국 정부가 남정현을 제1호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사실에서 확연히 알 수 있듯, 미국과 북한은 결코 우호적일 수 없는 적대적 관계였다. 그동안 굳이 양국의 대립과 갈등의 주요 사례를 소개하지 않더라도 한반도의 휴전선을 경계로 군사적 대치 상태에 있는 양국은 살얼음판을 내딛는 긴장 관계에 있었다. 그 정점은 두루 알듯이 국제사회의 엄중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잇따른 핵무기 개발과 대륙간탄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하면서 양국의 지도자들 사이에 주고받은 험한 말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와 인류에 전쟁의 불안과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전 세계는 분명 21세기의 시간을 살고 있으며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현실 속에서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 위한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는데 반해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20세기의 냉전체제의 유산에 구속돼 있는 형국이다. 1953년부터 한반도의 허리를 비틀고 있는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과 북쪽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분단이 애오라지 만들어내고 있는 각종 분단이데올로기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다. 이 냉전체제는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특수한 현실과 맞물리면서 자칫 한반도의 분단이 이렇게 영구히 고착된 채 늘 전쟁의 불안과 위기 속에서 일상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래서 분단이 남쪽과 북쪽 주민들 모두에게 내면화된 것은 아닌지 하는 분단 무기력증에 젖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실, 정작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러한 분단 무기력증이다. 분단에 대한 둔감증이야말로 한반도의 분단이 영구히 고착화될 수 있도록 쌓인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관련해 분명히 구별해두고 싶은 게 있다. 분단 무기력증 혹은 분단 둔감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의 진실을 작위적으로 굴절시키든지 왜곡시킴으로써 오히려 남과 북의 적대적 관계를 지속시키는, 그래서 늘 한반도의 군사적 및 사회정치적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곡해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이야말로 분단이데올로기를 자신의 이해관계로 적극 활용하여 사회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분단자본주의의 전형적 적폐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분단을 구실로 남쪽과 북쪽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악용되고 있는 안보의 가증스러운 행태악(行態惡)과 구조악(構造惡)을 말끔히 청산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제 더는 멈칫거릴 이유가 없다. 하루 빨리 이 철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 냉전체제의 유산에 취해 분단자본주의의 이익에 눈이 먼 한국사회를 향한 래디컬한 개혁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과단성 있는 결단과 담대한 실천이 필요하되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된다. 이번 북미 사이 첫 정상회담에서 단숨에 최상의 결과가 도출되지 않았다고, 또 다시 분단 무기력증에 빠져서는 결코 안 된다. 65년간 적대 관계에 있던 양쪽이 단 한 차례의 회동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없다. 우리는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를 정착하기 위한 노력을 경험한 적 있다. 첫 걸음마를 뗀 북미 관계가 한층 진전되고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여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체제를 정착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남과 북이 어우러진 평화의 일상이 도래하도록 우리의 지속적 관심과 응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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