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중간선거 앞두고 기름값↑...조급한 트럼프, OPEC 때려잡기

한상희 기자 hsh@ekn.kr 2018.07.11 08:25:53

  •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연합)


[에너지경제신문 한상희 기자]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이 유가를 계속 올리고 있다. 당장 가격을 줄여라!"

국제유가가 올 들어서만 22% 가량 상승하는 등 랠리를 펼치는 가운데,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OPEC 때리기에 나섰다. 현재 미국 휘발유 가격은 2014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연료비 부담을 높여 경기회복에 위협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치솟을 때, OPEC은 희생양으로 곧잘 이용돼 왔다. 그러나 OPEC의 증산이 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하기엔 힘들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준의 유가를 유지하기 위해선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안타깝게도 트럼프 정부가 이란 제재를 완화할 조짐은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핵협상을 ‘역사상 최악의 합의’라며 대선 후보 시절부터 대립각을 세운데다, 현재 이란 원유 수출을 100% 차단하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유가는 꾸준히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 1년새 70% 오른 유가…"OPEC 증산한다고 기름값 안 떨어진다"

clip20180710095319

▲지난 1년간의 브렌트유 가격 추이. 지난 1년 간 국제유가는 70% 가량 급등했다. (표=네이버 금융)


국제유가(북해산 브렌트유 기준)는 1년새 70% 가량 올랐고 지난 주 배럴당 80달러선에 바짝 다가섰다. 트레이더들이 공급중단을 상쇄하기 위해 이용가능한 전세계 예비생산능력이 심각하게 급감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영향이다.

트레이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려 들지도 않을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오는 11월 이란에 대한 제재가 발효되는 시점에, OPEC이 이란 손실분을 보충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 원유 수출을 전면 중단할 경우, OPEC은 하루 270만 배럴의 원유공급을 대체해야 하는데, 이는 회원국들이 모두 힘을 합해도 완전히 메우기엔 너무 큰 구멍이다.

OPEC이 이란의 손실분을 만회할 수 없다면 유가는 더 가파르게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BoMA)은 이란 원유판매가 완전히 중단되면,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폭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120달러면 현재의 배 가까이 되는 높은 가격 수준이다.

‘OPEC이 증산하면 유가가 떨어진다’는 트럼프의 논리대로라면, 그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휘발유 가격이 이미 내려갔어야 마땅하다. 지난 4일(현지시간) 사우디 아라비아는 지난 달 빈에서 열린 OPEC+ 총회를 앞두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6월 하루 105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5월 대비 50만 배럴 증산한 것으로, 2004년 6월 이래 월간 최대 상승폭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우디의 증산이 OPEC 총 생산량이 증가한 폭과 궤를 같이 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우디의 증산 물량은 캐나다 등지에서 발생한 손실분이 완전히 압도해버린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포트맥머레이 오일샌드 설비에서 발생한 35만배럴의 공급차질은 사우디의 증산물량을 완전히 상쇄했다.


◇ 사우디 예비생산능력은? 30년째 그대로… "상당한 불확실성"

트럼프 대통령은 OPEC이 석유를 숨겨놓고 유가를 올리기 위해 꽁꽁 숨겨놓고 있다는 듯이 말했으나, 이란 원유 손실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만큼의 예비생산능력을 가진 산유국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난 2016년 사우디 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사우디)는 즉시 일일 원유생산량을 1150만 배럴까지 늘릴 수 있다. 1250만 배럴에 도달하는데도 6∼9개월의 시간만 있으면 충분하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왕세자의 발언 이후 2년이 지났으나, 그는 수치가 바뀌었다는 점을 시사하는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사우디 유전이라고 해서, ‘화수분(재물을 담아 두면 끝없이 새끼를 쳐 그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설화상의 보물단지)’이 아니듯 예비생산능력은 줄어야 하는데, 당국은 1980년대부터 줄곧 2600억 배럴이라 주장하고 있다.

다른 기관들의 예비생산능력 추정치는 더 비관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1100만 배럴 이상으로 원유생산량을 늘리려면 채굴비용이 상당히 비싼 해상유전 생산량을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OPEC이 제공한 공식 통계에 따르면, 사우디의 월 평균 원유생산량이 최고치를 찍은 건 2016년 11월 기록한 1072만 배럴이다. 그 이상은 미지의 영역이다. 1000만 배럴 이상의 원유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아니지만 불확실한 상황에 쳐해 있다는 의미다. 블룸버그 줄리안 리 원유전문가는 "이 시점에서 사우디의 원유생산량과 관련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하루 약 20만 배럴의 예비생산능력이 입증돼 있는 만큼, 20만 배럴 정도는 당장 늘릴 수 있다는 것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밖에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쿠웨이트에 하루 수십만 배럴을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공유하는 중립지대에 최대 50만 배럴의 원유가 매장돼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사우디 당국이 환경 문제를 이유로 2015년 생산을 중단한 이래 이 지역은 유휴지(사용되고 있지 않는 토지)로 남아있다.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심해지자, 향후 몇 달 안에 쉬고 있는 이 지역 유전을 재가동하겠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세 개 국가 외에 OPEC 나머지 국가들은 10만 배럴 가량의 예비생산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회원국인 러시아는 이미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다만, 러시아는 얼마나 많은 생산용량을 복구할 수 있는 지 공식적인 수치를 시장에 공유한 바 없다. 러시아의 일일 원유생산량은 러 최대 투자은행 르네상스 캐피탈의 추정치인 21만5000배럴부터 국영석유기업 가스프로 네프트가 예상한 50만 배럴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란이 생산하던 일일 150만 배럴의 원유를 즉시 대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우디와 러시아가 최대치로 원유를 뽑아내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 전략비축유 풀기? "효과 없을 것"…FGE "트럼프, 원유시장 구조 이해 전혀 못하는 듯"


미국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미국이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전쟁이나 수급차질 등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해놓은 석유 )를 방출하는 것도 단기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지만, 효과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수요와 공급이 발생하는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유회사들의 가동률이 이미 최고치에 달한 만큼, 전략비축유가 추가할 공급은 수출물량으로 돌려야 한다. 이렇게 되면, 원유가 필요한 아시아 정유회사들에 도달하기까지 수개월의 시간차가 발생한다.

clip20180709181552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계정. "OPEC 독점 국가들은 유가가 계속 올라가는데, 자기들은 도움이 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미국은 자기네 나라들이 달러화 부족을 겪을 때 보호를 해줬는데도 그들은 오히려 유가를 더 오르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같은 방식으로 맞설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가격을 줄여라!"


지난 5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OPEC 독점 국가들은 유가가 계속 올라가는데, 자기들은 도움이 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미국은 자기네 나라들이 달러화 부족을 겪을 때 보호를 해줬는데도 그들은 오히려 유가를 더 오르는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같은 방식으로 맞설 수 밖에 없다. 당장 가격을 줄여라!"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1980년대부터 아태 및 중동 에너지시장을 분석해온 컨설팅 그룹 FGE가 원유시장에 대한 그의 몰지각함을 꼬집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FGE는 지난 주 보고서를 발표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원유시장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거나, 대통령이 보좌관의 말을 듣고 있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름값을 빠르게 낮추기 위한 방안으로는 이란 제재를 11월 4일 한꺼번에 부과하는 대신, 점진적으로 재부과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다. 물론 절차가 길어질 수 있지만, 원유시장과 가장 중요한 휘발유 가격에 가하는 압력도 완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리 전문가는 "유감스럽게도, 인내심은 대통령의 덕목 가운데 높은 순위에 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이란 제재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면서 "당장 더 많은 원유를 시장에 쏟아내는 것이 공급부족 우려를 완화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조치도 단기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리 전문가는 결론적으로 기름값을 낮추려는 트럼프의 정책이 전부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 유가에 반영될 것이라며, 유가는 계속 오름세를 탈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10일에도 유가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변수가 국제유가를 지속해서 압박하고 있는 영향이다. 베네수엘라와 리비아 등의 원유공급이 정정불안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도 유가 상승요인으로 꼽힌다. 캐나다에서는 일평균 36만배럴 규모의 신크루드 오일샌드 설비가 고장난 상태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배럴당 0.4%(0.26달러) 오른 74.1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9월물 브렌트유는 비슷한 시각 배럴당 1.01%(0.79달러) 상승한 78.86달러를 기록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맨 위로

배너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