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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재원노동법률사무소 우재원 공인노무사] 우리나라 영화중 역대 최고의 흥행물은 ‘명량’이다. 보통 천만관객이 초대박의 기준이 되는 현실에서 무려 1700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사실상 갱신하기 힘든 기록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내용이다. 이렇게 뻔한 영화가 크게 흥행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대형 배급사의 상영관 독점 때문이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하지만 2014년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역사적인 영웅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분석에 공감한다. 2018년 현재에도 그런 영화가 등장하면 좋겠지만, 요즘은 어벤져스 시리즈와 같은 슈퍼 히어로 무비가 대세이다. 그들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실제 인간이 아니다. 슈퍼 히어로들의 특징은 특수한 초능력이다. 이순신 장군처럼 인간적이진 않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대리만족의 쾌감은 있다.
영화에서 슈퍼히어로가 특수 능력을 갖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방사능 노출 또는 화학물질과의 접촉이다. ‘헐크’는 물리학자인 주인공이 방사능을 연구하던 중 감마선에 노출되어 탄생한 히어로이다. ‘스파이더맨’은 방사선으로 인해 유전자 돌연변이를 일으킨 거미에 물린 소년이 주인공이다. 4인의 매력적인 히어로가 등장하는 ‘판타스틱4’의 주인공들 역시 우주 방사선에 의해 초능력을 가진다. ‘엑스맨’도 핵 방사능에 의한 돌연변이들의 이야기이다.
위험물질에 노출되는 사고가 영화에서는 슈퍼히어로의 탄생 원인이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근무 도중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경우에는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 받을 뿐이다. 산업재해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질병을 얻는 경우는 직업성 질병이라고 한다.
물리적인 충격을 당하는 사고와 달리 즉시 피해가 나타나지 않고 입증도 훨씬 어렵다.
직업성 질병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업무와 업무상 사유로 인한 질병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상당인과관계는 업무수행성과 업무기인성으로 판단한다.
‘업무수행성’이란 사용자의 지배 또는 관리 하에 이루어지는 해당 근로자의 업무수행 및 그에 수반되는 통상적인 활동과정에서 재해의 원인이 발생한 것을 의미한다. ‘업무기인성’이란 재해가 업무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인정되는 관계이다.
인과관계의 규명은 직업성 질병을 인정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나 한계가 있다. 법이 기술과 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인과관계를 엄격히 규명할 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얼마 전 삼성전기 수원사업장에서 TV · 모니터 부품을 만들다가 백혈병에 걸린 근로자가 소송을 내 산재 인정을 받았다. 해당 근로자는 회사에서 x-ray 검사업무와 납 제거 업무를 3년 6개월 수행했다. 영화처럼 초능력은 생기지 않았고 퇴사 5년 후에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당시 만 26세였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근로자는 소송을 냈다. 쟁점은 상당인과관계의 인정 여부였다. 현재의 의학수준에서 위험물질에 노출되는 것과 백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로자에게 매우 불리한 부분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명확한 규명의 어려움이 곧바로 인과관계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입사이전에 건강하였고, 백혈병과 관련된 유전이나 병력이 없으므로, 유해 물질에 노출된 것과 발병사이에 관련성이 있음이 경험상 인정된다고 하였다. 법원이 인정기준을 완화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판결을 한 것이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산재보험제도는 근로자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 1위의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초과 근로가 만연한 과로사회에서 당연한 결과이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확립과 같이 과로사회에서 탈출하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미 발생한 재해에 대해서는 입법취지에 맞게 공정하고 신속하게 보상해야한다. 무분별한 산재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명확한 입증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공인노무사 등 전문가에 의한 합리적인 소명이 있으면 완화하여 승인할 필요가 있다. 산업재해 질병판정 시스템을 새롭게 리뉴얼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