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부채’가 완전히 사라진 세상, 좋을까

에너지경제 ekn@ekn.kr 2019.03.12 17: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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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수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과)


배영수 서울시립대 교수

▲배영수 서울시립대 교수(경제학과)


우리는 늘 부채를 걱정하고 있다. 가계신용 기준 가계부채는 지난해 말 1534조원을 넘어섰으며 국가부채도 708조원에 달하고 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각종 부채에 대한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있고, 언론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외채, 국가부채, 공기업부채, 심지어는 대기업 및 중소기업 부채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부채에 대한 우려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부채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물론 어떤 경제주체에게든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부채는 나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반인에게 부채는 언젠가는 갚아야 하고 그래서 현재의 선택을 제약하는 부담스럽고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도 과연 부채가 나쁘기만 할까? 만약 모든 경제주체가 부채를 다 갚아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부채라고 할 때 꼭 명심해야 할 것은 ‘누군가의 부채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산’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산 중에서는 부동산, 주식 등과 같이 부채가 아닌 것들도 있다. 하지만 부채는 반드시 누군가의 자산이다. 따라서 부채가 없다면 자산 중 상당 부분이 사라질 것이다.

자산은 가치를 미래로 이전하는 수단이다. 우리는 저축하면 당연히 나중에 이자가 붙어서 돌아 올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내가 저축한 돈이 저절로 불어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가 나의 저축을 가져다 쓰고 나중에 더 많이 돌려주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모든 경제주체가 전혀 빚을 지지 않는다면 저축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돈을 그냥 옷장에 보관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자는 없다.

부채와 관련하여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NPR)의 ‘플래닛 머니’(Planet Money) 팀에서 만든 재미있는 팟캐스트가 있다. 2000년 백악관이 작성한 ‘빚 없는 삶’(Life After Debt)이라는 비밀 문건을 입수하여 미 재무성 채권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어떠할지에 대해 아주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당시 미국은 재정흑자가 확대되면서 조만간 정부부채가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했다고 생각되지만 그 문건을 읽어 보면 당시에는 매우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저자인 제이슨 셀리그만(Jason Seligman)은 이 문제에 대해 하루에 최소한 16시간 이상씩 고민했지만 너무나 이상한 상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미국 정부가 부채를 완전히 갚아서 이 세상에 미 재무성 채권이 하나도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이 비밀 문건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먼저 무위험 자산 중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투자 대상이 하나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좋은 금융상품이 하나 줄어드는 차원을 넘어 미 재무성 채권의 금리가 무위험 이자율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으로는 공개시장조작의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국채를 공개시장에서 사고파는 과정을 통해 이자율을 조절한다. 그런데 재무성 채권이 없어지면 새로운 대상 증권을 찾아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은 정부가 빚을 모두 갚고 나서 저축까지 하게 되면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경제적, 비경제적 요인들로 인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부채와 관련하여서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은 ‘나의 부채와 우리의 부채는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아내에게 천만원을 빌리면 남편의 부채는 천만원이지만 우리의 부채는 영이다. 이것이 일본의 정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200%를 넘는데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GDP의 100%를 넘기 전부터 그리스의 정부부채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근본적인 이유다.

이쯤 되면 더 이상 부채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빚쟁이가 고맙게 느껴질 것이다. 차라리 정부는 빚을 지는 것이, 가능하면 우리 국민에게 빚을 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한국은행도 통화정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 중 누군가가 적절한 수준으로 돈을 빌려서 우리 중 누군가가 약간의 이자소득을 올릴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적절한 수준이라는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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