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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국회에 명랑운동회를 만들자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19.05.21 10:52

전경우 미래커뮤니케이션연구소 대표(작가)


1970~80년대 일요일 아침이면 TV가 있는 집안마다 활기찬 웃음소리가 들렸다.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 명랑운동회 시간이 돌아 왔습니다~"라는 변웅전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시작되는 MBC의 ‘명랑운동회’가 방송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연예 스타들이 어린 아이들처럼 뛰고 달리며 한바탕 웃음 잔치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고단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명랑운동회’는 1973년부터 방송된 ‘유쾌한 청백전’을, 1976년부터 녹화장소를 스튜디오에서 실내 운동장으로 옮기면서 규모와 내용을 확대해 선보인 것이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하는 줄다리기, 공굴리기, 장애물 경기 등을 오락적 요소와 버무려 내놓은 우리나라 최초의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이다. 드라마나 쇼 프로에서 근사한 모습으로만 보이던 스타들이 얼굴에 밀가루 범벅을 하면서 떡을 주워 먹고, 뒷짐을 지고 폴짝거리며 공중에 매달린 과자를 따 먹는 등 요즘으로 치면 갖은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시청자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명랑운동회’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애물 릴레이 달리기였는데, 다람쥐처럼 날쌘 주걱턱 김명덕이 속한 팀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하는 일이 많았다. 녹화 현장에 구경 왔다가 추첨을 통해 컬러 TV를 타가는 사람은 전국의 시청자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스타 소리를 듣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명랑운동회’를 거쳐 가야 했지만,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거기에다 허허허 웃는 소리까지 매력적인 변웅전 씨가 이 프로 최고의 스타였다.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선망이었던 변 씨는 ‘명랑운동회’와 함께 ‘묘기대행진’ 등을 이끌며 최고의 국민 MC로 활약했고 후에 국회의원으로 꽃길을 걸었다.

‘명랑운동회’는 수상하고 어지러운 시절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나, 프로 스포츠와 따끈따끈한 영화 등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볼거리, 즐길 거리에 밀려 1985년에 종영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인기는 한동안 식을 줄 몰랐다. 축구도 전투처럼 해야 하는 군대에서는 선임이 후임에게 "명랑운동회 하느냐?"며 머리박기를 시켰고, 군기가 빠진 내무반을 ‘명랑 내무반’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도 지역과 동창회 이름을 내건 명랑운동회가 무수히 열리고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고, 유행이 돌고 돌듯, 방송도 그렇다. 1999년 KBS에서 ‘출발 드림팀’을 내보내면서 스포츠 오락 프로그램의 부활을 알렸다. 2003년까지 일요일 저녁에 방송됐던 ‘출발 드림팀’에는 운동신경 좀 있다는 연예인들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고 실제로 이 프로를 통해 출세한 연예인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뜨고 싶으면 애를 잘 보든지, 뜀틀이라도 잘 넘어야 된다’는 말이 나왔다.

‘출발 드림팀’이 배출한 스타로는 이 프로 MC였던 이창명이 대표적이다. 이창명은 이 프로 하나로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 외치는 광고 모델을 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새색시처럼 얌전할 것만 같았던 가수 조성모도 ‘드림팀’으로 나서 제 키보다 높은 장대를 뛰어넘는가 하면 이 프로를 계기로 마라톤 완주에 나서 성공하는 등 굳센 사나이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덕분에 조성모는 당시 250 만장의 앨범을 판매하는 등 펄펄 날았다. 이밖에도 탤런트 이상인이 ‘체육인’의 칭호를 얻었고, 지금도 맹활약중인 가수 김종국과 전진도 드림팀을 빛낸 스타였다.

요즘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출발 드림팀’은 저리 가라다. 몸싸움, 멱살 잡기, 줄다리기, 장도리 뺏기, 망치로 문 부수기, 되지도 않은 구호 외치기, 소리 지르기, 서류 빼앗기, 드러눕기 등 격투기 선수들도 울고 갈 기괴한 종목을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번에는 공중부양, 최루탄 터트리기는 없어서 좀 덜 매웠다.

국회에도 ‘명랑운동회’ ‘출발 드림팀’ 같은 것을 도입하면 어떨까. 몸이 근질근질한 의원님들, ‘굳센 체력, 슬기로운 마음으로’ 몸도 좀 푸시고 싸움질 좀 덜하게. 이걸 방송으로 내보내면 시청률은 안 나오겠지만, 국민들 짜증은 좀 덜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계절에 별 생각을 다 해 본다. 또 오월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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