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SK이노베이션. |
지난달 30일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미국 델라웨어주 연방법원에 전기차 배터리 관련 인력 유출로 인한 영업비밀침해로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LG화학이 법적다툼을 하기도 전에 내외부의 비난에 직면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국내 업계에선 "국내 업체끼리 싸움으로 전기차 배터리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만 반사이익을 거두게 한다"는 논란을 일으키는 가운에 중국 등 경쟁상대국은 국내업체간 싸움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즐기는 분위기다. 회사 내부적으로는 LG화학 직원들이 내부 게시판을 통해 "소송보다 직원들 처우개선이 먼저"라는 쓴소리를 쏟아내며 회사측의 자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해외에서 집안싸움 안타깝다" 시각
▲LG화학 직원이 ESS 배터리 모듈을 체크하고 있다.
26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의 이번 소송으로 국내 업체들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 경쟁에서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해외에서 ‘집안싸움’을 벌여 안타깝다는 시각이 많다. LG화학은 2017년 이후 70여명의 직원들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하면서 핵심 기술이 유출됐고, SK이노베이션은 정당한 인력 스카우트로 기술유출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양사가 국외 소송전을 벌임에 따라 해외 경쟁사로의 기술유출이라는 파국을 맞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영업비밀 유출이 있었는지를 따지려면 두 회사 모두 배터리 관련 기술자료를 제출하고 해당 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과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앞서고 있다. 더군다나 국내 3사 점유율을 모두 합쳐도 1위 중국 CATL(23.8%)는 물론 2위 일본 파나소닉(22.9%), 3위 중국 BYD(15.3%) 등에도 못 미친다"면서 "정부의 전폭적인 보조금 지원과 대규모 시장을 확보한 중국, 앞선 기술력과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국이라는 강점을 지닌 일본은 국내 기업이 전력 질주를 해도 상대하기 버거운 데 국내 기업끼리 싸움을 하다 경쟁국인 일본, 중국 등만 유리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중국 언론도 양사 다툼에 관심
▲중국 언론 ‘Sohu’가 보도한 LG화학 소송 관련 기사.
중국 언론은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법정다툼을 관심 있게 보도하며 즐겨하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 언론 ‘Sohu’는 두 업체의 다툼을 상세하게 다루며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인력이 중국으로도 상당히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Sohu는 "최근 몇 년 동안 신에너지 자동차에 대한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고,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매년 40∼50% 성장했으며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시장 판매는 물론 기술면에서도 이미 일본을 넘어서 3위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현재 한국 리튬 배터리 회사들은 시장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핵심 업체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인력유출 문제로 법정싸움을 벌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배터리 업계에서는 이번 소송전의 핵심을 LG화학이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을 견제하고 인력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면서 LG화학에서 경쟁사로 자리를 옮긴 한 직원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문제는 LG화학은 그만 둔 직원들이 어디로 가는지만 관심이 있고, 건물 안의 고통스럽고 심각한 상황은 보지 못하고 있다"며 LG화학의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중국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는 가운데 한국의 고급 인력이 중요한 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최근 들어 중국의 주요 배터리 회사가 SK이노베이션, LG화학, 삼성SDI 등 대기업의 R&D 및 엔지니어링 인력을 대상으로 대규모 ‘인재 빼가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 LG 내부 직원들 "직원 처우나 개선해" 쓴소리
가장 큰 문제는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한 LG화학의 내부에 있다. 익명의 직장인 커뮤니티인 모바일앱 ‘블라인드’에는 연일 LG그룹 계열 직원들의 싸늘한 시선이 담긴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블라인드앱 내 LG그룹 계열 직원들만 이용 가능한 LG그룹 게시판에는 "쓸데없는 소송에 공들일 시간에 직원들 처우나 더 고민해라"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커녕 소를 잡고 앉아 있네"라는 식으로 LG화학에 일침을 가하는 글들이 이어졌다. LG그룹 임직원들은 LG화학이 이번 소송의 핵심 주장인 ‘인력유출’에 대해 LG그룹의 본질적인 내부 문제들을 해결하겠다는 노력도 없이 경쟁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모양새에 크게 실망했다는 분위기다.
지금도 LG그룹 게시판은 "오창공장 엔지니어 100 중 70∼80은 SK 이직을 생각한다" "오창이든 대전이든 모두 SK 가고 싶어한다. LG화학 진짜 찌질해 보인다" "회사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일이 오피셜하게 드러났네 부끄럽다" "엔지니어 대우도 그렇고 기업문화 차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글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LG화학이 이번 소송과 관련해 임직원들의 동조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LG화학은 불필요한 소송보다 내부 직원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 처우나 기업문화를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소송은 두 회사의 사실관계를 가리는 것이지 기술유출의 우려는 전혀 없다. 또 블라인드 글이 LG 현직 직원들인지, 아니면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 사람들의 글인지 확인할 수 없다. 객관성이 결여된 이런 글들을 인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에너지경제신문 김민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