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용률 낮아 걸음마 수준…암호화 분산보관으로 정보유출 우려 해소
▲사진=픽사베이. |
"신분증 주시고요, 잠시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14일 서울의 한 KB국민은행 영업점을 찾아 손바닥 정맥 인증 서비스를 신청했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손바닥 인증 서비스를 안내하는 문구가 창구 벽에 붙어있다. 첫 등록 때 4번 손바닥을 인증하면 등록이 마무리된다는 설명이다.
국민은행 직원이 현금자동인출기(ATM) 인증도 함께 이용할 것인지 물었다. 원하지 않는다면 영업점 창구에서만 사용할 수도 있고 원할 경우 ATM기에서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등록할 수 있다고 했다. 창구와 ATM기에서 모두 사용하겠다고 하고 동의서에 몇 가지를 체크했다. 휴대폰 문자메시지(SMS)로 전송된 인증번호도 입력했다. 이후 쫙 핀 손가락을 댈 수 있도록 생긴 등록기에 손바닥을 대고 들었다 댔다를 4번 반복했다. 손바닥으로 본인 인증이 가능한 이른바 ‘손쉬운뱅킹’ 등록이 완료됐다.
손바닥 정맥 등록을 한 후에는 앞으로 급하게 은행을 찾아야 할 일이 있을 때 신분증이 없어도 손바닥을 이용해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4월 이처럼 손바닥 정맥 인증만으로 본인 인증을 하고 더 나아가 영업점 창구에서 출금까지 할 수 있는 ‘손으로 출금 서비스’를 출시했다. 아직 국민은행 모든 영업점에서 바이오인증을 통해 출금이 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손바닥 인증을 통해 출금까지 하기 위해서는 서비스가 가능한 영업점을 찾아가야 한다. 국민은행은 우선 50개 점포에서 서비스를 시범 실시한 후 하반기에 전국 영업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쉬워진 ‘영업점 생체인증 출금 서비스’
▲지난 12일 금융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의결된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안 내용.(사진=금융위원회) |
국민은행은 이번 서비스 출시를 앞둔 지난해 12월 금융위에 은행업 감독규정 제29조3과 이 서비스가 충돌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해당 규정은 은행이 통장이나 인감 없이 예금을 지급하는 행위를 불건전영업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다만 지점장 승인을 받았다면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규정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손바닥 인증 출금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지점장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에 금융위는 정맥 인증이 신뢰성을 높은 본인확인 수단으로 보고 사전에 포괄 승인을 받아 예금을 내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본인 확인 후 예금을 지급하는 행위를 금지대상에서 제외했으며, 정맥과 홍채 등 인증 등을 거쳐 예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KB국민은행 현금자동인출기(ATM)에 설치된 손바닥 정맥 인증 기능.(사진=송두리 기자) |
◇금융당국도 서비스 개발에 적극적…"혁신환경 조성하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4월 12일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손으로 출금 서비스’ 출시 기념식에서 서비스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KB국민은행) |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국민은행의 ‘손으로 출금서비스’ 시연행사에 참석해 이번 서비스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그동안 비대면 거래 위주 서비스 개선이 이뤄져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대면거래 성향 고령층 고객의 편의도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며 "통장, 신분증, 현금카드, 비밀번호 등이 없이 은행거래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편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처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금융혁신을 위해서는 다수의 거래고객을 확보한 기존 금융회사의 노력이 중요하다"며 "규제측면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금융회사가 안심하고 혁신을 추진할 수 있도록 혁신환경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으로 금융회사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는 의미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또한 "이번 서비스가 전면 도입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유권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사업은 금융당국의 적극적 개선의지, 금융결제원의 고객정보 분산 보관 신기술과 금융회사의 도전적 혁신이 힘을 모아낸 결실이다"라며 "앞으로 금융회사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도 "8월말∼9월초 도입"…시중은행들 도입 바람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사진=각사) |
신한은행 또한 손바닥 인증 출금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현재 영업점에서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서비스까지는 제공하고 있다"며 "ATM에서 손바닥 정맥 인증을 통해 출금 등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37% 정도인데, 사용률이 꾸준히 유지되면 앞으로 창구 등으로 서비스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은 비대면 기기에서부터 손바닥 정맥 인증 서비스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오는 11월부터 손바닥 정맥 인증으로 기기에서 창구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카드, 통장이 없어도 입출금, 이체 등 자동화기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영업점에서는 대여금고를 이용할 때 손바닥 정맥 인증을 이용하고 있는데, 출금 서비스 도입 여부는 아직 미정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영업점에서는 대여금고를 이용할 때 기존 열쇠와 지문을 이용하던 방식에서 손바닥 정맥으로 인증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비밀번호와 손바닥 정맥 인증으로 본인확인과 개문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BNK부산은행이 지난 4월 1일부터 창구에서 신분증 없이 손가락을 대면 1회 최고 100만원의 출금을 할 수 있는 ‘지점맥 생체인증 서비스’를 시범 실시하고 있다. 부산은행 관계자는 "이번 서비스 시범 실시를 통해 고객 반응과 서비스 운영 전반을 검토한 후 전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아직 이용률은 낮아…기술개선으로 정보유출 우려는 해소중
은행들이 바이오 인증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에도 이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실제 영업점에서는 손바닥 인증 서비스를 이용하는 일반 고객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며 "비대면 모바일 앱에서 신분증이 없어도 인증을 통해 ATM기 등에서 현금 출금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신분증이 없다고 해도 바이오 인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은행 영업점 한 관계자도 "4월 출시 후 아직 홍보가 많이 되지 않아 잘 모르는 고객들도 많고 손바닥 인증을 이용하는 것을 낯설어 하는 고객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료제공=금융위원회. |
또한 바이오정보를 분산관리함으로써 대량 해킹위험을 방지하고, 금융회사의 바이오정보 오남용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 바이오정보는 원본이 아닌 패턴화를 거쳐 2번 암호화된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개별 고객 식별로 불가능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바이오 인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손바닥 정맥 인증 출금 서비스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체정보를 한번만 등록하면 이후 필요할 때마다 쉽게 본인 확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신분증 등의 일치 여부를 확인하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며 "금융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층은 물론 일반 고객들까지 금융서비스 이용에 편리함을 느끼게 된다면 앞으로 손바닥 인증을 이용하는 고객 수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송두리 기자 dsk@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