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전력망 중·러·일 연결 '동북아 슈퍼그리드' 사업 집중 논의
한전·산업부 "경제성 확인…공동 실증 연구 단계"
▲문재인 대통령과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4일 오후 청와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동북아 수퍼그리드(Super-Grid)’가 주목받고 있다.
동북아 슈퍼그리드는 몽골과 러시아의 풍부한 천연·친환경 자원을 이용해 생산된 전력을 세계 전력 소비량의 35%, 아시아의 77%를 차지하는 전력 고(高)소비 지역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에 공급하자는 구상이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처음 주장했다. 이날 문 대통령은 2012년 소프트뱅크 본사를 방문해 손 회장의 수퍼그리드 구상을 듣고 큰 영감을 받았던 것을 언급하며 반가움을 나타냈다. 이는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기존 석탄·원전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 탈(脫)원전 정책을 펼친 배경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제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 연설에서 "전력 협력은 에너지 전환이라는 세계적 과제를 해결하는 일이며 동북아의 경제 번영과 평화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동북아 경제공동체와 다자(多者)안보체제까지 전망하는 큰 비전을 가지고 ‘동북아 슈퍼그리드(Super Grid)’ 구축을 위한 협의를 시작할 것을 동북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제안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 한전·산업부 "경제성 확인, 공동 실증 연구 단계"
현재 동북아 수퍼그리드는 각국 정부와 전력회사들이 실무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단계다. 한국전력공사는 중국 국가전망, 일본 소프트뱅크, 러시아 로세티와 4사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기틀을 마련한 상태다.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과 로세티(러시아의 한전 같은 회사)간에 임원급 면담이 이뤄지고, 일본 소프트뱅크 등 전력회사들도 한전과 매주 컨퍼런스콜을 진행하고 있다"며 "대 중국과의 진전이 가장 큰 상황이며 관련국 모두를 연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전은 2017년 중국 국가전망공사(SGCC), 일본 소프트뱅크와 한-중-일 전력망 연계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중국 웨이하이와 한국의 인천, 한국의 고성과 일본의 마쓰에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의 경제성이 확인된 것은 물론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 3개사는 한-중-일 전력망 연계를 위한 최적의 사업모델 개발을 위해 협의체를 구성해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전은 한-러 전력 연계 타당성 검토를 위한 공동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동북아의 청정에너지 공동 활용 및 국가 간 협력강화를 위해 지난해 9월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서 직접 제안한 ‘북방경제 9-브릿지(Bridge)’ 가운데 1순위로 언급한 동북아수퍼그리드 개념도. 자료=북방경제협력위원회 |
한전 전력계통본부 관계자는 "한전은 지난해 중국, 러시아, 일본과 동북아 슈퍼그리드 협력 MOU(업무협약)를 맺고 10개월 동안 예비타당성을 조사했다"며 "중국에는 수심 72m 해저에 366km 길이의 HVDC(초고압직류케이블)를 연결하고, 일본에는 수심 200m에 460km 길이의 선로를 연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수퍼그리드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간 협의는 물론 양국 기업과 연구소 의 공동연구를 통한 기술적·경제적 부분의 구체적인 백 데이터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며 "설비 투자와 송전 경로는 물론, 각국 전력의 킬로와트(KW)당 구매가격, 한국의 도·소매 전력 가격 등과 관련된 문제는 실증 연구를 통해 기본을 만든 뒤 ‘한국정부와 한전’이 한 팀이 돼 외국 정부와 전력업체와 협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제적·기술적 측면 외에 안보적 측면, 법 개정과 관련된 부분, 국민정서 등도 면밀히 따져야 한다"며 "기존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추진을 위해서는 일본 전기사업자 무관심, 중국의 일대일로 등 자기중심적 사업추진, 러시아와 북한 문제 등 국가간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대식 여시재 동북아연구실장은 "공급국(몽골, 러시아)과 소비국(한·중·일)이 크게 양분돼 있어 일방향 거래 구조, 여전히 높은 화석 발전원 비중, 국영 기업에 의한 장기 거래 중심의 경직된 전력 시장, 초국적인 협의체의 부재 등 동북아 지역 슈퍼그리드의 발전을 막는 장애요인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최근 남북 관계 개선으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는 남·북·러 전력 연계망 프로젝트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며 "특히 한반도의 육로를 통한다면 해저케이블 건설을 최소화하는 등 슈퍼그리드 구축에 경제 사회적으로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현실적이며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