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발족한 반기문 위원장의 국가기후환경회의가 국민 정책제안을 내놓았다. 전국에서 가동 중인 60기의 석탄화력 중 최대 27기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시켜버리고, 나머지에 대해서는 ‘상한제약’을 발령해서 가동률을 정격용량의 80%로 낮추라는 것이다. 또한 생계형을 제외한 배출가스 5등급 차량 114만대의 운행을 제외하고, 고농도 주간에는 차량 2부제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미세먼지 배출량의 20%를 줄이겠다는 제안이다.
130명의 전문가와 500명의 국민참여단이 열띤 토론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다는 국민제안이 몹시 실망스럽다. 환경부가 제공한 불완전한 배출량 통계를 근거로 공허한 탁상공론을 벌였던 것이 분명하다. 기후환경회의가 내놓은 제안은 환경부가 지난 20년 동안 고집해왔던 엉터리 정책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기후환경회의가 환경부의 대변인이 돼버린 셈이다.
미세먼지의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무시해버렸다. 과거의 미세먼지는 인구, 자동차, 산업시설이 집중된 서울에만 한정된 문제였다. 서울에서 20킬로미터 떨어진 안양에서도 미세먼지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2002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석탄화력도 없고, 자동차나 산업시설도 없는 강원도 산골 지역에 고농도 미세먼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세먼지는 더 이상 서울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이 미세먼지로 신음하고 있다.
미세먼지의 색깔도 달라졌다. 공장과 석탄화력의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구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는 대부분 검은색이었다. 서울에서는 몇 시간만 외출을 해도 옷과 얼굴이 시커먼 미세먼지로 범벅이 됐었다. 그런데 이제 검은 미세먼지는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흰옷이 시커멓게 변하는 일도 없어졌다. 요즘 문제가 되는 미세먼지는 회색이다.
미세먼지의 발생 지역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미세먼지의 정체도 달라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우리나라 농촌의 심각한 미세먼지 상황을 경고하고 있다. 겨울철 바싹 마른 농지에서 피어오르는 미세먼지의 양이 엄청나고, 퇴비와 비료에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의 양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굴뚝과 배기구를 관리하는 구시대적인 낡은 대책으로는 더 이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석탄화력의 가동을 큰 폭으로 줄이라는 제안은 비현실적이다. 현재 상황에서는 석탄화력을 줄이면 어쩔 수 없이 LNG발전을 늘여야 한다. 그런데 LNG의 발전단가가 석탄보다 훨씬 높고, 불안정하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모두 18차례의 석탄화력발전 상한제약을 발령했고, 발전사들은 152억 원의 손실을 감수했다.
LNG의 높은 발전단가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에 인접한 LNG발전소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가 석탄화력에서 배출되는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LNG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기후환경회의의 제안으로 국민이 부담하게 될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국가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석탄화력의 가동을 줄이기 위해 무작정 전력 수요를 관리하고, 전기요금을 인상하라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떡이라도 너무 비싸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후환경회의가 정부의 망국적인 탈원전 정책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 원전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의 가장 효과적인 친환경 발전 수단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상식이다. 원전의 안전은 우리의 노력으로 확보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검증받은 한국형 원자로 기술을 폐기해버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원전 산업계의 붕괴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 운전도 보장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현실도 매우 심각하다. 신재생의 성급한 확대에서 드러나고 있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