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서울 R&D캠퍼스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이 아이디어를 나누고 있다. |
[에너지경제신문=이종무 기자] # 이훈 씨는 1년 전 지능형 전력망 사업 분야 스타트업 ‘에바’를 창업했다. 이동식 전기자동차 충전기를 개발중인 에바는 지난해 11월 법인 설립 후 8개월만에 네이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슈미트 등 3곳에서 12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난달에는 전기차 충전 서비스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된 제주도에서 관련 사업자로 선정돼 내년부터 2년간 실증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3억 원도 안 되는 자본금으로 3명의 공동 창업자로 시작한 에바는 벌써 직원이 8명으로 늘었다.
에바는 2017년 삼성전자 C랩에서 시작했다. C랩은 삼성전자가 임직원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창의적 조직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도입한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이다.
◇ 실험에서 시작한 프로그램…경영 한 축으로
글로벌 기업에 불고 있는 ‘사내벤처 육성 바람’이 국내 대기업에도 빠르게 안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창의적인 문화를 조직에 도입하기 위한 고민에서 출발한 사내벤처가 이제는 기업 경영의 한 축으로 주목 받고 있다.
기술의 고도화와 기술 경쟁 격화, 글로벌 저성장 기조 등 이른바 ‘성장의 벽’이 현실화하고 있는 가운데 사내벤처 도입으로 신사업을 발굴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산업을 이끌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요람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2012년 12월 사내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을 처음 도입했다. 엄격한 조직문화, 과도한 업무량, 철저한 성과주의 등이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 일종의 실험이었다.
2015년 8월 사내벤처가 스타트업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스핀오프(분사) 제도를 도입했는데, 제도 도입 이후 4년만에 145명의 임직원이 스타트업에 도전해 40개 기업을 창업했고 200여 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 등 국내 경기 활성화에도 기여하는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
실제 C랩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 중에는 에바 이외에도 에임트, 이투이헬스, 링크플로우 등이 국내외에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에임트는 얇지만 단열 성능이 10배 높은 진공 단열재를 판매하며 국내 유통 대기업에 친환경 신선식품 패키지를 공급하는 등 올해만 50억여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건강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투이헬스는 지난달 미국의 1차 의료기관들과 서비스 계약을 성사시키며 미 의료 시장에 진출했다. 360도 웨어러블 카메라를 만드는 링크플로우는 지난해 미 크라우드 펀딩에서 목표액의 860%를 달성하는 등 현재까지 누적 투자액 160억 원을 기록했다.
▲서울 관악구 삼성전자-서울대 공동연구소에 위치한 삼성전자 'C랩 팩토리'에서 C랩 과제원이 3D 프린터를 활용해 시제품을 만들고 있다. |
◇ 삼성·현대·SK·롯데…스타트업 요람으로 변모
지난 2000년부터 20년 가까이 사내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현대·기아자동차는 지난 5월 사내 유망 스타트업 3개를 독립 기업으로 출범시켰다. 이들 3개사는 자동차 실내 공기질 관리, 차량 개인화 기술, 유·아동 카시트 등 자동차와 관련된 기술을 보유했으며, 각각 최소 3∼5년간 육성·준비 기간을 거쳤다. 현대·기아자동차가 현재까지 육성한 스타트업은 40개가 넘으며 이들 중 분사된 스타트업은 모두 11개다.
SK그룹도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계열사에서 사내벤처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달 13일 사내벤처 프로젝트 ‘하이게러지’가 첫 결실을 맺었다. 1기 6개 팀 중 4개 팀이 지난 8월 모두 법인 설립을 마쳤다. 이들은 향후 준비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자체적으로도 사내벤처 전용 펀드를 설립해 지원과 투자 규모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LG는 LG CNS를 시작으로 LG디스플레이와 LG유플러스 등이 사내벤처 제도를 적극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특히 서울 마곡의 LG 사이언스 파크 내 개방형 연구 공간에는 LG그룹 사내벤처를 포함한 11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LG 계열사들과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이밖에도 롯데 등 대기업도 사내벤처 육성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사내벤처는 최근 주요한 흐름이다. 구성원들의 튀는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발굴해 고용 창출 등 사회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벤처 기업 특유의 창의적 조직문화를 전사에 도입해 확산시킬 수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대내외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기업가정신과 유연한 조직문화를 도입해 기민한 움직임으로 미래 기회를 잡으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