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가스 생산기지 |
국제 천연가스(LNG) 가격이 불과 1년 만에 반토막 나는 등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미국을 중심으로 공급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미중 무역분쟁, 평년보다 따뜻한 날씨 등으로 인한 수요둔화, 그리고 이에 따른 LNG 재고 증가라는 요인들이 서로 맞물리면서 글로벌 LNG 시장에 ‘퍼펙트 스톰’이 몰려왔다는 진단이다. 퍼펙트 스톰이란 여러 악재들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극도로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LNG 선물 1월물 가격은 MMBtu당 2.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지난해 11월 30일에 기록된 MMBtu당 4.61달러 대비 47% 가량 하락한 수치다. LNG 선물 가격은 올해 들어서만 거의 20% 떨어졌다. LNG 수요가 상대적으로 높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영문판인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11월 마지막 주 기준 아시아 LNG 스팟가격은 MMBtu 당 5.70달러 수준에 머물렀는데 이는 MMBtu 당 10달러를 웃돌았던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가격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관련 ETN에 투자한 투자자들 사이에서 희비가 엇갈리고 있는 모양새다.
천연가스 선물 가격과 연동된 신한금융투자의 '신한 천연가스 선물 ETN(H)'의 경우 작년 11월 30일 기준 1만 100원을 기록했지만 지난 3일에는 4820원에 장을 마감함으로써 -52%의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같은 성격의 '신한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H)'도 마찬가지로 같은 기간동안 3만 7300원에서 6905으로 무려 81% 급락했다. 삼성증권의 '삼성 레버리지 천연가스 선물 ETN' 또한 지난 3일 7305원으로 거래를 마감했지만 이는 작년 11월 30일 3만 7295원의 종가대비 80% 하락한 수준이다.
반대로 천연가스 선물 가격이 하락했을 때 수익이 발생하는 '신한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 ETN(H)'와 '삼성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 ETN'의 지난 3일 종가는 작년 11월 30일 대비 각각 160%, 176% 급등했다.
◇ 가격폭락의 핵심 원인은 공급과잉…따뜻한 날씨도 한 몫
이처럼 LNG 선물 가격이 하락한 가장 큰 이유는 공급과잉 때문이다. 미 경제매체 CNBC는 5일 "공급과잉에 따라 가격이 하방 압력을 받고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LNG 공급량은 올해 사상 최고 수준의 천연가스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는 미국 덕분에 넘치고 있는 상황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의 ‘단기 에너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LNG 생산량은 과거 2005년부터 2018년 사이 무려 70% 급증했고 올해 생산량은 전년대비 10% 증가한 일평균 921억 입방피트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인해 미국에서 LNG를 생산하는 것이 과거에 비해 쉬워졌다. 여기에 외신들은 올해 미국에서 LNG 액화설비 시설 3곳이 신규 상업가동에 들어가면서 공급량이 급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IA에 따르면 루이지애나 주(州)에 위치한 카메론 LNG 1호 트레인, 텍사스 주에 위치한 프리포트 LNG 1호 트레인, 조지아 주에 위치한 엘바 섬 LNG 1호 트레인이 각각 5월 31일, 9월 3일, 9월 30일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LNG 수출능력도 덩달아 올라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EIA는 "올해 LNG 수출량은 일평균 47억 입방피트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내년에는 64억 입방피트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또 "미국에 이어 호주와 러시아산 LNG 공급량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LNG에 대한 수요가 넘쳐나는 공급량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경제를 짓누르는 미중 무역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양국이 간신히 이뤄낸 ‘1단계 무역 합의’ 또한 공식 서명으로까지 이어지기까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미국은 오는 15일부터 1560억 달러 규모의 중국 제품들에 15%의 추가 관세를 예고해온 만큼 해당 기한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이 추가 관세를 부과해 미중 무역전쟁은 다시 확전 국면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LNG 최대 수입국으로 꼽히는 중국은 미국 관세조치의 보복 차원으로 미국산 LNG에 대해 25%의 관세를 매겼다. 현재 미국산 LNG는 중국 시장에 유통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S&P 글로벌 플래츠의 글로벌 LNG 부문 마델린 자우디 전무는 "미국산 LNG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사실상 없어진 데 이어 유럽에서의 천연가스 재고는 거의 가득 찼다"며 "이로 인해 미국이 수출판로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기온이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던 점이 LNG 선물의 가격하락을 이끌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 크레딧 스위스에 따르면 올해 9월부터 11월까지 기온이 작년에 비해 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난방 수요가 전년대비 줄어들면서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다. 또 미국의 날씨전문 방송인 더 웨더 채널(The Weather Channel)에 따르면 이번 달부터 내년 2월까지 노스다코타 주, 미네소타 주, 위스콘신 주의 일부 지역에서만 평년보다 기온이 낮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평년기온과 비슷하거나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EIA는 이번 겨울철 천연가스 재고 소진량이 평균수준을 하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EIA는 올해 11월부터 내년 3월까지 LNG 재고 소비량을 1조 9000억 입방피트로 추산하고 있다. 이럴 경우 LNG 재고는 내년 3월 약 1조 9000억 입방피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는 5년치 평균보다 9% 높은 수준이다. 11월 3째 주 기준 미국 LNG 재고량은 3조 6380억 입방피트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약 14% 높은 수준이다.
◇ 극심한 한파 찾아와야 가격 소폭 회복…앞으로 수출량 줄일 수도 있어
이렇듯 LNG 재고 소진율이 평균보다 둔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일각에서는 기온이 평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도 LNG 선물가격이 계속 하락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브라이언 러번 수석 기상학자는 ‘보통’ 수준의 겨울철 날씨가 지속되면 가격이 2.25달러까지 내려가고 기온이 평년보다 오를 경우 2달러 선이 무너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작년과 같이 극심한 한파가 찾아올 경우 "시장을 그나마 살릴 수는 있다"며 가격이 2.75달러 수준까지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권에서는 글로벌 LNG 과잉공급에 따라 수요공급 재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이 수출량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티그룹은 최근 투자노트를 공개하면서 "내년 유럽과 아시아 지역의 천연가스 가격은 미국이 수출량을 줄일 밖에 없게 만드는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모건스탠리는 "미국 천연가스 수출량은 내년 2분기 또는 3분기까지 최대 27억 달러까지 감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현재 수출량에 거의 절반가량 해당되는 규모다. 모건스탠리의 데빈 멕더멋 자산 애널리스트이자 원자재 전략가는 "천연가스가 현재 아시아에 넘쳐나지만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넘친다"며 "이에 따라 미국이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스윙 서플라이어’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 설명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LNG 공급량을 감축시킨다는 건 극단적인 조치에 해당된다"며 "그러나 공급과 수요의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란 전망으로 인해 이러한 가능성에 힘이 조금씩 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